“업무가 끝난 후에는 관저에서 보고서 보는 시간이 제일 많습니다. 국정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 국정 따로 취미 따로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 전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이런 대통령이 29일 처음 시행하는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과연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은 영화나 공연 등을 할인된 가격에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시행된다. 정부의 4대 국정 기조 중 하나인 문화 융성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이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뮤지컬 ‘영웅’을 관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웅’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을 다룬 창작 뮤지컬로 현재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 중이다.
‘영웅’ 관람을 놓고 청와대가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도 고민 중이라는 말이 들린다. 최근 중국 하얼빈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개관한 것과 관련해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는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폭언으로 한일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영웅’을 관람할 경우 순수한 공연 관람을 넘어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외교적 메시지’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모양이다.
‘영웅’은 일본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보다는 동양 평화를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극 중에서 안중근 의사는 “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한 손으로 이토를 쐈지만 내 아들들의 두 손은 기도하는 손으로 모아지길 바라오”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 작품을 보러 오는 일본인 관광객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영웅’을 관람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 물론 대통령이 한 번 공연을 봤다고 해서 문화생활이 확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행보가 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분명 있다.
“최근에 ○○ 공연을 봤는데, 정말 유쾌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더군요.” 다음 기자회견에선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들었으면 하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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