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문가들은 신흥국 통화가 상당 기간 약세를 이어간다 해도 각국의 경제 기초체력(펀더멘털)에 따라 차별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외환보유액이 넉넉하고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는 나라에선 약간의 혼란은 있겠지만 경제성장에 큰 악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24일 전 세계 56개 신흥국을 취약성 정도에 따라 5개 그룹으로 나눴다. 가장 취약한 첫 번째 그룹은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경제정책과 빈약한 외환보유액으로 경제위기를 자초한 나라들이다. 아르헨티나는 2000년대 초 원자재 시장 호황기에 콩 옥수수 등 주력 생산품의 수출이 급증하자 각종 정책에 정부 재정을 마구 투입했다. 하지만 세계 금융위기와 중국의 성장 둔화로 원자재 수요가 줄고 미국의 테이퍼링까지 겹치자 페소화 가치가 급락했다.
두 번째 그룹은 신용 거품과 대규모 경상적자로 단기외채 상환 능력이 떨어져 테이퍼링 충격에 취약한 터키 남아공 인도네시아 태국 칠레 페루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꼽은 테이퍼링의 ‘5대 취약국(Fragile Five·터키 남아공 인도네시아 브라질 인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자산운용사 슈로더가 지목한 ‘안절부절못하는 8개국(Edgy Eight·5대 취약국+헝가리 폴란드 칠레)’에도 일부 속해 있다.
세 번째는 ‘유산 위험(legacy problem)’에 시달리는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다. 동유럽 3개국은 오랜 공산주의 체제로 자국의 은행 시스템 자체가 워낙 취약해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상당한 고전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됐다.
네 번째 그룹은 고공성장을 구가하며 한때 ‘세계의 성장 엔진’으로 각광받았으나 최근 성장세가 둔화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브릭스(BRICs)’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27%에 이르지만 원자재 및 노동집약적 저가 제품 위주의 수출이라는 과거 성장모델이 한계에 부닥쳤다. 강도 높은 경제 개혁이 필요한 곳이다.
신흥국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2014∼2015년 성장 전망이 밝은 나라로는 한국 필리핀 멕시코 체코 등이 꼽혔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비중이 큰 이들이 ‘신흥국 경제 약세, 선진국 경제 강세’ 추세에 따라 상당한 수출 이득을 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은 2012년 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무려 22개월째 경상수지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세계 7위인 외환보유액도 3464억6000만 달러로 사상 최고다.
닐 셰어링 캐피털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모두가 신흥국 위기를 말하지만 각 나라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며 “신흥국 간 차별화가 이처럼 큰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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