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유출 스트레스에 내 인생 망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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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온갖 정보 다 샌다]
왜곡된 정보 확산… A씨의 하소연
분신현장 지나가다 촬영 했더니 누리꾼이 방조자로 몰며 신상털어

“내가 분신이라도 해야 내 신상을 턴 누리꾼들이 이 고통을 알아줄까요?”

지난해 12월 31일 서울역 앞 고가도로에서 분신한 고 이남종 씨의 ‘자살 방조자’로 몰려 누리꾼들의 ‘신상 털기’를 당한 A 씨는 지난달 29일 기자와 통화를 하는 내내 목소리가 떨렸다.

A 씨는 사건 발생 당시 서울역 고가도로 아래를 걸어가다가 이 씨의 분신 장면을 목격하고 휴대전화로 이 모습을 촬영했다. 한 방송사가 A 씨를 인터뷰해 보도하자 ‘일간베스트저장소’를 비롯한 일부 강경 우파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A 씨가 이 씨의 분신을 방조하거나 유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A 씨가 과거 진보 성향 단체에서 일하며 블로그에 분신자살 관련 글을 올린 흔적이 있다는 것 등이 근거였다. 이들은 “말리는 과정에서 불을 점화했고…”라는 A 씨의 방송 인터뷰도 ‘이 씨의 분신 당시 A 씨가 바로 옆에 있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사실무근이었다. A 씨를 사건 참고인으로 조사한 경찰은 “다각도로 조사한 결과 A 씨는 이 씨와 아는 사이가 아니고, 폐쇄회로(CC)TV에도 A 씨는 분신 당시 고가도로 밑에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이 씨의 분신을 말린 것도 경찰관이었다.

하지만 ‘누리꾼 수사대’의 신상 털기는 집요했다. 누리꾼들은 A 씨의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 활동 내용뿐 아니라 카카오스토리와 트위터 등에서 A 씨의 개인 신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집해 공개했다. 개중에는 A 씨가 지인과 나눈 지극히 사적인 대화 내용도 있었다.

A 씨는 기자에게 “누리꾼들이 내 인생을 망쳐 놨다”며 “미쳐 돌아 버릴 지경”이라고 말했다. A 씨는 “왜곡된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확산되면서 범죄자 취급을 받고, 시간이 지날수록 걷잡을 수 없이 더 많은 내 신상이 공개됐다”며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떨린다”고 말했다. A 씨는 교회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로부터 “자살을 방조했다는 그 사람이 선생님 맞느냐”는 질문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A 씨의 친척 등 가까운 사람들도 의혹을 제기하는 인터넷 게시글을 봤다.

‘신상 털기’를 당한 뒤 건강도 나빠졌다. A 씨는 “심장 쪽이 나빠졌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는데 병원에서는 지나친 스트레스 탓이라고 한다”며 “내 신상을 아는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고 집에 들이닥칠까 불안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폐쇄하고 의혹을 제기한 누리꾼들을 경찰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다.

조종엽 jjj@donga.com·변종국 기자
#신상 유출#신상 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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