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청일전쟁 때 중국(청)의 군사력은 양적으론 일본을 앞섰지만 무기 수준과 지휘관 역량과 전술 등 질적 측면에서 크게 뒤졌다.
당시 중국의 육군 병력은 약 95만 명으로 일본 육군(17만4000여명)보다 5배 이상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력이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성격이 강해 부대 훈련과 장비 면에서 근대화된 일본군에 뒤떨어졌다. 반면 일본군은 70㎜포로 무장한 포병대대를 비롯해 공병·수송대대까지 갖춰 장거리 원정전투에 능숙했다. 이종호 건양대 교수는 "실전적 훈련이 부족했던 중국군 장병 대부분은 전투 공황상태를 보여 일본군에게 '약병(弱兵)'으로 비춰졌다"고 말했다.
중일 양국의 해군력도 사정이 비슷했다. 일본은 군함과 어뢰정을 합쳐 55척의 함선을 보유해 중국(99척)보다 수적으로 열세했다. 하지만 신식 기술로 건조된 일본 함선은 속도와 화력 면에서 중국 함선을 압도했다, 일본 연합함대에 배치된 함포는 중국 북양함대보다 118문이 더 많았다. 영국 해군의 최신편제와 전법을 도입하고, 높은 숙련도의 수병까지 갖춘 일본 해군에게 낙후된 중국 해군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변변한 군사력을 갖추지 못했던 조선은 두려운 시선으로 두 거인의 결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2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청일전쟁의 치욕을 교훈삼아 해군력 증강에 열 올리고 있다. 경(經)항공모함을 비롯해 구축함과 호위함, 잠수함 등을 갖춘 중국은 수적으로 일본을 능가한다. 일본이 갖지 못한 전략핵잠수함도 5척이나 운용 중이다.
일본도 뒤지지 않는다. 최신예 이지스함을 비롯해 구축함과 경항모급 헬기탑재호위함은 물론 '잠수함 킬러'인 해상초계기는 100여대나 운용 중이다. 일본은 평화헌법 때문에 핵보유가 금지됐지만 그간 원전(原電)에서 추출한 막대한 양의 핵연료로 언제든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공군력의 경우 중국은 폭격기와 전투기, 공중급유기, 수송기 등 일본보다 월등히 많은 군용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군용기는 첨단전자장비를 갖춰 중국 기종보다 작전 능력이 우수하다는 평이다. '공중 지휘소'인 조기경보기는 일본이 중국보다 더 많다.
한국의 경우 이지스함과 잠수함, 전투기, 조기경보기 등으로 이뤄진 해공군력을 갖췄지만 중일 양국보다 양적 질적으로 열세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육군의 경우 중국이 병력과 전차 등 재래식 전력 면에서 한국과 일본보다 절대적으로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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