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는 국회 국방위원회와 정보위원회에서 활동할 때인데, 김은성 씨는 그 무렵 안기부에서 정보위 전문위원으로 국회에 파견 나와 근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기부 직원이 국회 정보위 수석정보위원을 겸직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드러내놓고 반대하면서 국회 전문위원은 국회 사무처에서 공개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부터 김은성 씨는 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최규선의 전화 때문에 나를 신라호텔 커피숍으로 불쑥 찾아왔던 것이다.
나는 전부터 그를 별로 좋지 않게 보았다. 정보원은 우리가 민주화투쟁을 할 때 군사정권의 앞잡이로 우리를 탄압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보부나 안기부에서 고위층의 신임을 받았으니 2차장까지 올라간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했다. 당시 안기부에서는 여야 의원들에게 촌지를 돌렸지만 나는 탄압받던 과거를 생각하고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도 신라호텔로 찾아온 김은성 차장과 악수만 하고 그냥 돌려보냈다.
그런데 김은성 차장은 내가 살갑게 대하지 않으니까 나름대로 기분이 나빴거나 위기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뒤 김방림 의원이 나를 찾아와서 물었다.
“김태랑을 국정원 2차장에 보낼 생각이세요?”
“아니, 난 그런 거 모르는데.”
“시중에 그런 소문이 나돈다면서 정성홍이가 내게 물어요. 권 고문께 확인 좀 해달라고….”
“내가?”
정성홍 씨는 국정원 경제과장으로 김은성 차장의 직계 부하였다. 이름은 듣고 있었으나 나는 일면식도 없었다. 김방림 의원에 따르면 김은성 씨는 내가 자기를 2차장에서 물러나게 하고 김태랑 전 의원을 그 자리에 앉히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부하직원인 정성홍 과장을 시켜 내게 사실 확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해 주었다.
김태랑 전 의원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국정원 2차장은 직무의 성격상 수사관 출신이 해야 되는 자리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런 생각을 해본 일도 없었다. 어쨌든 그때도 김은성 차장은 내가 자기를 좋지 않게 본다고 여긴 듯했다.
그런데 그후 대통령이 나를 청와대로 불렀다. 대통령은 나와 단둘이 식사를 하면서, “권 최고, 내가 이런 보고를 받았네”라면서 내가 데리고 있던 최규선이 대통령의 3남 김홍걸을 이용하고, 내 이름을 팔고 다니면서 이권에 개입한다는 국정원 보고가 올라왔으니 이를 어찌 처리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최규선에게 사무실 손님 접대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맡긴 일이 없었으므로 이렇게 대답했다.
“국정원 보고는 엉터리입니다. 어떻게 국정원이 대통령 아들에 관한 문제를 사실 확인도 않고 보고를 합니까? 그런 식이면 다른 보고는 또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선 홍걸이를 불러 사실여부를 물어보시지요. 만일 홍걸이가 이권에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면 자기 입으로 그 사실을 발설하지는 못하더라도 심적인 가책을 받아 일을 중단할 것이고,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억울하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하셨다. ○사실무근
나는 다음날 김홍걸을 불렀다.
“어제 아버님한테 말씀을 들었느냐?”
“네, 사실무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권 개입한 것이 사실이냐?”
“아닙니다.”
“틀림없지?”
“네, 틀림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김홍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끝내지 못하고 귀국했다. 공부를 하다 지친 나머지 진로를 바꿔보고 싶어 했다. 아버지가 대통령이지만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보겠다는 뜻이 강했다.
그래서 그는 국제금융에 대해 알고 싶어 했고, 그에 따라 자연 국제금융과 벤처 쪽을 많이 아는 최규선과 가까워졌던 것 같다. 그 무렵 김홍걸은 최규선과 함께 사우디의 알 왈리드 왕자를 만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내가 불러서 물어볼 때까지 그는 ‘아직’ 비리를 저지른 일은 없었다. 이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김홍걸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국정원의 김은성이라는 사람이 너에 대한 엉터리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린 모양인데, 보고서의 전달자는 임동원 국정원장이다. 그러니까 네가 김은성 차장을 만나 왜 이런 엉터리 보고서를 작성했는지 확인해보고 따질 것은 따져라.”
그리고 청와대에 들어가서 김은성 차장의 보고는 사실이 아니라고 대통령께 말씀을 드린 후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홍걸이가 답답한 모양입니다. 나이도 있고 하니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좀 해보고 싶은데, 대통령 아들이니 아무거나 할 수도 없는 처지고…. 그러니 미국으로 보내 거기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배우게 하면 어떻겠는지요? 우선 홍걸이가 최규선이하고 단짝처럼 지내는 모양이니 펀드 같은 일을 배우라고 미국에 보낸 다음 최규선이와 관계를 끊도록 만들겠습니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 ‘최후병기’ 꺼내들고 가석방 거래설 ▼ 2001년 진승현 게이트로 구속된 김은성
김대중(DJ) 정권의 등장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로선 한마디로 ‘악몽’이었다. 전두환 정권 이래 안기부장, 국내 담당 차장, 해외 담당 차장, 기조실장으로 이어지는 수뇌부는 온통 영남 출신이었다. 호남은 딱 한 명, 장세동 부장이 있었을 뿐이다. 장세동을 호남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안기부에 DJ 정권은…정말 ‘재앙’이었다. 권노갑 고문이 김은성 2차장(국내)에 대해 처음에는 ‘군사정권의 앞잡이로 고위층의 신임을 받았으니 그 자리에까지 올라가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한 것은 김대중 정권 출범 당시 동교동계 사람들의 원초적 심사(心思)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교동계뿐만이 아니었다.
김대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이해찬 의원은 DJ가 안기부장을 맡을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그쪽은 쳐다보기도 싫습니다”라며 말을 자를 정도였다. 민청학련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의 일을 떠올렸을 것이다. 동교동계인 김방림 전 의원은 “정권이 바뀌자 안기부, 경찰, 검찰 사람들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고 회고했다.
DJ가 이해찬 의원이 손사래를 치자 이종찬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초대 정보부장으로 결심한 것도 안기부의 그런 분위기를 감안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해찬 의원은 충청도, 이종찬 위원장은 서울 출신으로 둘 다 ‘비호남’이었다. 게다가 이종찬 위원장은 중앙정보부 경험까지 있었다.
영남 정권의 ‘핵우산’이 걷히자 안기부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뛰었다. 거꾸로 엄익준(전북 전주), 김은성(전남 장성), 김형윤(전남 해남), 정성홍(전남 해남) 같은 호남 출신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였다. 특히 엄익준 2차장이 2000년 5월 간암으로 사망한 이후엔 김은성 2차장-정성홍 경제과장의 세상이었다.
김, 정 두 사람에겐 ‘최종병기’가 있었다. 이희호 여사 소생인 홍걸에 대한 감청 기록과 DJ의 ‘숨겨둔 딸’이 바로 그들의 무기였다.
“2001년 말 진승현 게이트로 구속된 김은성의 권력유착은 2002년 10월 특별가석방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논란이 됐다. 김은성은 당초 가석방 대상 명단에 없었으나 누군가가 막판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김은성이 ‘권력실세’와 모종의 막후거래를 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2003년 동아일보 ‘비화 국민의 정부’ 시리즈 중)
기사에 나온 ‘권력실세’는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 김은성이 ‘최종병기’를 꺼내들고 막후거래를 한 것이다. 박지원은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5년 4월 SBS가 DJ의 ‘숨겨둔 딸’을 직접 만나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그 과정에서 진승현의 돈이 김은성, 정성홍을 통해 ‘숨겨둔 딸’에게 전달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김은성은 결국 ‘최종병기’를 숨기기 위해 평소 자신을 백안시하던 권노갑을 끌고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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