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소치 ‘위대한 도전’]‘겨울 종목 불모지’ 한국의 맞춤교육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8일 03시 00분


빙상 선수 韓 1609명 < 日 7000여명


“어떻게 한국이 이렇게 강해졌나요?”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만난 외국 기자들에게서 수없이 받은 질문이다. 한국은 기존의 메달 밭인 쇼트트랙에서 금 2, 은 4, 동메달 2개를 땄고 그동안 금메달과 인연이 없었던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 3, 은메달 2개를 수확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까지 금빛 행진에 가세한 한국은 금 6, 은 6, 동메달 2개로 역대 최고 성적인 종합 5위를 달성했다.

밴쿠버 대회 한국 5위-일본 20위

밴쿠버에서 금메달 없이 은 3, 동메달 2개로 종합 20위에 그친 일본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에 빠졌다.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앞서 겨울 스포츠가 대중화됐고 1972년 삿포로, 1998년 나가노 등 2차례나 겨울올림픽을 개최한 국가다.

2010년 기준 한국의 빙상 종목 등록 선수는 1609명. 일본은 4배가 훨씬 넘는 7000여 명이다. 경기장 수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은 스피드스케이팅 전용 경기장이 태릉국제스케이트장 한 곳에 불과하다. 피겨스케이팅 전용 경기장은 없다. 일본은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 전용 경기장이 수십 개나 된다.

일본은 1956년 코르티나담페초 대회에서 첫 메달을 신고했지만 한국은 36년이 지나서야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본은 한국 빙상을 몇 수 아래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1992년 알베르빌 대회를 시작으로 한국이 쇼트트랙 강국으로 우뚝 서고 2010년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에서도 금메달을 따자 시선이 달라졌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김관규 전무이사는 “예전에는 일본 대표팀 코치들이 한국 코치들과는 얘기도 안 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먼저 와서 인사를 건네는 등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 ‘겨울 종목 선진국’ 일본을 넘어섰다 ▼
역대 메달 수는 韓 45개 > 日 37개



선수촌 상시 훈련-맞춤형 교육이 비결

한국이 겨울올림픽 아시아 최강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로는 ‘1인자 효과’와 삼성이 주축이 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적극적인 지원 등이 꼽혀 왔다. 1인자 효과는 1등이 1등을 만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1등이 나오기 힘들지만 일단 등장하면 후배들이 보고 배우며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쇼트트랙은 김기훈을 시작으로 전이경 김동성 안현수 진선유 이정수 등이 1인자 계보를 이어 왔고 스피드스케이팅은 배기태 김윤만 제갈성렬 이규혁과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으로 이어졌다. 피겨스케이팅은 이보다 늦었지만 김연아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기준으로 ‘김연아 이전’과 ‘김연아 이후’로 나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일본이 뒤처진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 한국체육과학연구원 김권일 박사는 “선수에 따른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해 태릉선수촌에서 1년 내내 집중 지원을 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국제대회 성적의 중요성을 인식한 일본은 2001년 일본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 2007년 내셔널트레이닝센터(NTC)를 개관했다. 각각 한국체육과학연구원과 태릉선수촌의 일본 버전으로 보면 된다. 첨단 시설과 장비 등 하드웨어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낫다. 예산도 많고 연구원들의 자질도 뛰어나다. 그러나 아직까지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선수들을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김 박사에 따르면 한국은 지도자와 연구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머리를 맞대고 개인별 훈련 프로그램을 만든다. 반면 일본은 지도자가 경험 위주로 훈련을 시키고 연구자는 보조적인 역할에 그친다. 연구자의 교육 기능이 없는 것이다. 김 박사는 “1년 내내 선수촌에서 집중 훈련을 하는 것도 한국만의 특징”이라며 “일본을 포함해 많은 국가가 관련 시설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 대회 직전 보름 정도 합숙훈련을 하는 데 그친다”고 말했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1년 넘게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태릉에서 훈련했다. 외국 선수들보다 1.5배 정도 많은 훈련량이다.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이 1년 동안 쉬었던 날은 여름휴가(1주일)와 크리스마스 휴가(3일)가 고작이다. 국가에서 상시 합숙훈련을 지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김 박사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 노하우가 쌓인 쇼트트랙을 통해 필요한 근육과 기량을 완성시킨 선수들이 이를 스피드스케이팅에 적절히 활용했기 때문”이라며 “일본이 이런 점에 주목해 선택과 집중에 이은 맞춤형 훈련을 한다면 한국에 크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소치#빙상선수#한국#일본#밴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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