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복시성(諡福諡聖)은 가톨릭에 익숙지 않은 이에겐 낯선 용어다. 한자 그대로 풀자면 ‘복자(福者·Blessed)와 성인(聖人·Saint) 칭호를 올린다(諡)’라고 직역할 수 있다. 시복시성은 가톨릭에서 순교했거나 덕행이 뛰어났던 인물을 사후에 신앙의 모범으로 삼아 공경하도록 특별 지위에 추대하는 것을 일컫는다. 먼저 복자에 올라야 다음에 성인(혹은 성녀)으로 추대할 수 있다.
복자로 추대하려면 엄정한 조사를 거친 신청서류를 로마 교황청의 시성성(省)에 제출해야 한다. 여기서 기적심사가 이뤄지는데 일반적으로 두 가지 기적이 입증돼야 하나 순교자는 순교 사실만으로 심사가 면제된다. 단, 사망 5년 이내에는 요청할 수 없다. 후보자는 복자나 성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따지는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한다. 성자는 복자 가운데 성성의 장관이 교황에게 윤허를 요청하는데, 최종심사위원회에 자문을 한 뒤 추대한다.
한국 가톨릭은 현재까지 성인 103위를 배출했다. 1925년 기해박해(1839년)부터 병오박해(1846년) 사이에 희생된 순교자 79위의 시복식이 열렸고, 1968년에는 병인박해(1866년) 순교자 24위의 시복식이 거행됐다. 이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해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에서 시성식을 갖고 103위를 모두 성인으로 추대했다.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와 다산 정약용의 조카였던 정하상 바오로(1795∼1839)가 대표적이다.
가톨릭에서 시복시성은 1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행해졌는데, 성인으로 대접하는 성서 속 인물이나 기록이 사라진 초기 교회 성인까지 포함하면 성인은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 51번과 시복식 147번을 거쳐 성인 482명과 복자 1342명을 배출했다. 자신도 선종 6년 만인 2011년 복자로 추대됐다. 가톨릭 역사상 가장 빨리 시복된 경우다. 당시 가톨릭계의 염원에 따라 5년의 유예 기간 없이 선종 후 바로 시복 절차에 들어갔고 한 프랑스 수녀의 기적 증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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