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신안 ‘염전 노예’ 직격탄… 천일염 주문 뚝 끊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4일 03시 00분


“염전 1곳 때문에 지역 이미지 추락”… 생산자協 “자정노력 물거품 될라

“염전 노예 사건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요. 그래도 천일염 생산자 전부가 노예 상인으로 욕을 먹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섬이 1004개여서 ‘천사의 섬’으로 불리는 신안군에는 유인도 72곳에 주민 4만4162명이 산다. 염전 854곳(2606ha)에서 전국 천일염의 75% 정도를 생산할 만큼 신안의 주 소득원이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신안은 노예 상인이 사는 곳’이라는 식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오명을 쓴 건 최근 신의면의 한 염전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이다.

○ ‘염전 노예’, 쑥대밭 된 신안

서울 구로경찰서는 신안군 신의면 홍모 씨(48)의 염전에서 김모(40), 채모 씨(48)가 1∼5년 동안 일한 대가를 주지 않았다며 홍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홍 씨는 장애인인 김 씨 등을 감금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세간에서 ‘염전 노예 사건’으로 불리며 논란이 일었고 천일염 소비 부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안 천일염 생산자 600여 명이 참여하는 생산자협회에는 최근 “실제 염전에서 그런 일이 있었느냐” “내가 먹는 천일염도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냐”는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협회는 해마다 인권 침해 방지, 깨끗한 염전 환경 유지를 위한 결의대회를 가졌지만 염전 노예 사건으로 물거품이 됐다며 고개를 숙였다. 협회는 섬 특성상 모든 염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다 파악하기 힘들지만 파문을 일으킨 곳은 홍 씨 염전이 유일하고 나머지 염전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부분 염전은 생산자 부부가 근로자와 같은 환경에서 함께 노동을 한다는 것. 박형기 협회장은 “올해 천일염 가격은 kg당 평균 50원 정도 떨어졌다. 간장 된장 제조를 위한 천일염 출하 시기가 됐지만 사건의 여파로 주문이 뚝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염전 노예 사건을 일으킨 홍 씨는 3∼4년 전까지 새우 양식을 하다 부도를 냈고 교통사고 사망사건까지 일으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건이 터지기 직전 섬을 떠나 육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신의면 주민들은 “홍 씨가 지역 망신을 톡톡히 시켰다”고 비판했다. 홍 씨의 한 친척은 “장애인 2명에게 통장으로 월급을 지급하지 못한 건 절차상 실수다. 이달에 곗돈 5000만 원을 받아 장애인 2명에게 목돈을 주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애인을 감금한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다만 작업할 때 장애인들에게 욕설과 손찌검을 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 인권 침해 악순환 어떻게 끊을까


전국 천일염의 90% 정도를 생산하는 전남의 염전은 1025곳(3430ha)에서 총 2449명이 일한다. 염전 일은 워낙 고되 항상 인력난에 시달린다. 주인들은 생활광고지 등에 근로자 모집 광고를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직업소개소를 통해 인력을 구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외국인 근로자 21명이 일했다.

최근 진행된 인권실태 조사에서 신안군 팔금면의 한 염전이 관광비자를 받은 베트남, 중국 근로자들을 채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염전은 외국인 산업연수생 105명을 배정받았지만 한 명도 쓰지 못했다. 주인들은 천일염 생산 시기가 5∼9월로 제한돼 있고 여름에는 더위 때문에 아침 저녁에만 일할 수 있는데 쉬는 시간까지 근로시간으로 계산해 연수생에게 월 300만∼400만 원을 줘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염전에서 일하는 근로자를 정부, 사회단체에서 소개해 주고 인권 침해를 막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노숙인, 장애인 사기를 막기 위해서는 공개적인 염전 구직·구인 통로가 마련돼야 한다는 얘기다. 신안군도 인권 침해를 유발한 염전은 한 번 적발되면 6개월 영업정지, 두 번 적발되면 허가를 취소하는 등 강력한 제재 조치를 마련키로 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염전노예#천일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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