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이집트 샤름엘셰이크 국제병원 입원실. 전날 폭탄테러를 당한 충북 진천중앙교회 신자들은 사건 다음 날에도 거대한 폭발음 환청을 듣는 듯 몸을 떨었다.
무차별 테러 공포는 병원 곳곳에 더욱 깊게 드리워 있었다. 국제 테러단체인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과격단체 ‘안사르 바이트 알마끄디스(성지를 지키는 사람들)’가 한국인 3명이 숨진 타바 폭탄테러를 자신들이 저질렀다며 추가 테러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공식 트위터에서 “우리 공격의 표적이 되지 않게 모든 국가가 자국민을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시키도록 4일간의 유예기간을 주겠다”고 경고했다.
이번 테러로 숨진 한국인은 성지순례 관광에 나선 진천중앙교회 신자 김홍열 씨(64·여), 현지 가이드 겸 여행업체 블루스카이 제진수 사장(56), 한국에서 동행한 가이드 김진규 씨(35)로 확인됐다. 부상자 14명은 타바에서 남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샤름엘셰이크 국제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버스에는 가이드와 교회 신자 등 한국인 33명, 이집트인 운전사와 가이드 등 모두 35명이 타고 있었다. 이집트인 운전사도 숨졌다. 경상자 15명은 18일 오후 1시 45분 인천공항으로 귀국한다.
병원에서 만난 최정례 씨(67·여)는 초점 잃은 멍한 눈동자로 기자를 쳐다봤다. 파편 제거 수술은 받았지만 여전히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최 씨는 “폭발 뒤 피가 흥건히 고인 신발을 벗어 버린 뒤 양말만 신고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고 말했다.
다친 아내 곁을 지키던 문희정 씨(56)는 “폭탄이 터지면서 정신을 잃었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총소리가 들렸다. 총성이 1분 정도 계속돼 버스 복도에 엎드려 있었다”고 했다. 김동환 진천중앙교회 목사의 부인인 주미경 씨는 “버스 지붕 위에 시체가 있었고 다른 시신도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시신은 병원 안치실로 옮겨졌다.
병원 곳곳에서는 무장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주이집트 대사관 박흥경 공사가 이들을 비집고 병원을 둘러싼 철조망 너머로 “버스가 대기하던 중 가이드 2명과 운전사가 차 밖에서 짐을 정리할 때 아랍계 청년이 버스에 들어가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 사장이 못 들어가게 막아섰고 청년이 돌아서는 순간 폭탄이 터졌다”고 덧붙였다. 하니 압델 라티프 내무부 대변인은 “버스로 걸어온 남자가 세 번째 계단을 디뎠을 때 폭발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테러 직후 이스라엘이 20여 대의 구급차를 보내려 했지만 이집트 당국이 거절해 부상자들은 차로 3시간 걸리는 이 병원으로 와야 했다. 한때 부상자 7명이 옮겨졌던 인근 누에바 병원도 부상자가 있을 환경이 아니었다고 박 공사는 말했다.
생존자들은 “제 사장이 몸으로 막지 않았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 사장이 막는 바람에 계단참에서 폭탄이 터지면서 파편이 대부분 의자 아래로 퍼져 중상자가 7명에 그쳤고 대부분 무릎 아래에 상처를 입었다.
1990년대 초 여행업계에 뛰어든 제 사장은 현지 관광업계의 베테랑으로 꼽힌다. 현지의 조찬호 씨(48·무역업)는 “제 사장은 한때 한인회에서 감사를 지내는 등 한인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는데 이번에도 희생정신을 발휘했다”며 애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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