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된 지 1년 6개월이 흐른 지난해 여름. 국가정보원의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내란음모 사건은 가을과 겨울을 거쳐 봄의 문턱에 와서야 한 고비를 넘겼다. 지난 4개월 동안 이석기 의원의 재판은 매주 월, 화, 목, 금요일 4번씩 열렸다. 선착순으로 나눠주는 방청권을 받기 위해 오전 5시 반까지는 수원지법으로 출근해야 했고, 그때마다 나는 법원 당직자들을 깨우는 ‘민폐’ 기자가 됐다.
재판은 준비기일 4번을 포함해 모두 50번 열렸고, 43번을 꼬박 지켜봤다. 몸살이 나서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를 빼곤 ‘역사적인 현장’을 줄곧 지킨 셈이다.
지난해 10월 첫 공판준비기일. 이 의원이 법정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살이 좀 찐 것 같았다. 방청석의 통합진보당 지지자들도 “걱정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얼굴이 좋다”고 귀엣말을 나누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의원은 재판 때 의자에 기대앉아 주로 자료들을 살펴보거나 때로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검찰이 징역 20년을 구형할 때는 표정 변화가 없었는데, 1심 재판에서 징역 12년이 선고되자 입술을 꼭 다물고 재판부를 몇 차례 쳐다봤다.
이 의원 지지자들은 마치 ‘연예인 팬’ 같았다. 가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재판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기도 했다. 이 의원이 일어나거나 앉을 때 모두가 손을 흔들어 응원했다. “의원님 힘내세요!” 이 의원도 이들을 향해 웃거나 손을 흔들었다.
이달 초 이 의원은 최후진술을 하면서 “지난 5개월간 재판을 치우침 없이 공정히 이끌어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정원과 검찰 수사 때 묵비권을 행사하고 재판 때도 검찰 측 신문엔 묵묵부답이던 그로선 이례적 수사였다. 그러나 1심에서 징역 12년이 선고되자 변호인단은 “꿰맞춘 판결”이라며 재판부를 맹비난했다.
재판장인 김정운 부장판사는 맺고 끊는 단호함이 돋보였다. 재판부가 ‘녹음파일’을 증거능력이 있는 정식 증거로 채택하자 변호인단은 당황하며 “다음 기일에 의견서를 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장은 “법에 따라 ‘즉시’ 해야 한다. 지금 하라”고 단호하게 잘랐다. 연이은 퇴정 조치에도 법정에서 소리를 지른 보수단체 회원에게는 지체 없이 감치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면모도 풍겼다. 재판이 늦게 끝나는 날엔 피고인들이 저녁식사로 따뜻한 도시락을 먹는지 일일이 챙겼다. RO 사건 제보자가 증인으로 나와 “밥을 잘 넘기지 못했다”고 말하자 ‘마음고생’을 짐작하겠다고 위로했다. 휴정 없이 재판이 2시간을 넘겼을 때 던진 농담은 아직도 생생하다.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화장실 갈 권리를 침해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10분간 휴정합니다.” 법정에 웃음이 퍼졌다.
모두 32개, 50시간 분량의 녹음파일을 법정에서 모두 들은 것도 특이한 경험이었다. 녹음파일 속 피고인들은 똘똘 뭉친 가족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지여 너는 나다, 내가 바로 이석기 동지다”를 선창·제창 형식으로 수차례 주고받았다.
변호인단은 국정원이 압수수색 때 가져간 달러 뭉치를 거론하면서 “임대차 보증금으로 마련한 돈이라 빨리 돌려받아야 한다”는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살풍경한 법정도 인간세상이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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