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선수들이 선생님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을 위해 꼭 금메달을 따자. 그리고 포상금이 나오면 쌤 팔을 완전히 고쳐 드리자.”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박승희(22·화성시청)와 김아랑(19·전주제일고), 그리고 박승희의 친동생인 남자 대표팀의 박세영(21·단국대) 등 3명은 소치 겨울올림픽에 오기 전 자기들끼리 모여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이들이 말한 ‘쌤’은 2002년과 2003년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조남규 코치(29)다. 2012년 초 은퇴한 조 코치는 그해부터 경기 화성시 유앤아이센터 빙상장에서 이들을 가르쳐 왔다.
지도자로 변신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던 그해 5월 초. 조 코치는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팔을 크게 다쳤다.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해야 할 만큼 큰 부상이었다.
병상에 누워 있던 조 코치는 막막했다. 평생 함께했던 얼음판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때 조 코치를 일으킨 것은 스승의 날인 5월 15일에 받은 아이들의 편지였다.
‘쌤이 열심히 치료 받으실 동안 전 더 열심히 운동하고 있을게요. 그러니깐 저희 염려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 또 집중하세요.’(김아랑)
‘쌤, 얼른 나으셔서 애들이랑 운동도 하시고 축구도 하셔야죠. 금방 오실 거라고 믿고 있을게요. 선수촌에 들어가지만 주말마다 나오니까 쌤 오실 때까지 애들 잘 데리고 있을게요.’(박승희)
그가 지도하던 아이들은 각자의 편지를 큰 종이 위에 붙여서 그에게 가져왔다. 자기들끼리 열심히 훈련하는 사진도 보여줬다.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바로 뛰어나가 아이들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일어서야 했다. 한 달 후 퇴원한 그는 성치 않은 몸으로 곧바로 스케이트장으로 출근해 아이들을 가르쳤다. 박승희는 조 코치가 사고를 당하기 직전인 2012년 봄에 국가대표가 됐고, 김아랑과 박세영은 그의 집중적인 지도를 받고 지난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국가대표가 된 이들은 태릉선수촌에 입소할 때면 국가대표 코칭스태프의 지도를 받았지만 개인 훈련을 할 때면 조 코치가 함께했다. 그렇게 이들 3명은 나란히 소치 올림픽에 출전했다.
조 코치는 현재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많이 회복됐다. 하지만 스케이트 날을 갈 때 등 정밀한 작업을 할 때는 아직 어려움이 남아 있다.
박승희와 김아랑, 박세영은 조 코치의 심정을 잘 안다. 아이들은 아직 “선생님 팔을 저희가 완전히 고쳐드릴게요”라는 말을 조 코치에게 직접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조 코치 역시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안다. 박승희와 김아랑이 힘을 보태 이날 여자 3000m 계주에서 딴 금메달은 서로의 마음을 합친 결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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