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24)가 20일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쇼트프로그램에서 74.92점으로 1위에 오르자 시카고트리뷴의 필립 허시 기자는 “정말 미스터리한 선수”라고 기사에 썼다. 허시 기자는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대회 이후 한 시즌을 완전히 쉬었고 소치 올림픽 전까지 두 번의 세계선수권을 포함해 겨우 네 번의 국제대회만 출전했을 뿐”이라며 놀라워했다.
역설적이게도 ‘김연아의 미스터리’를 풀어 준 것은 일본의 한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일본 방송 니혼TV는 6일 소치 올림픽 특집에서 김연아의 미니 다큐멘터리(사진)를 통해 그가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얼음 위로 복귀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후 한국의 한 누리꾼이 이 영상에 한글 자막을 달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면서 화제가 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의 여느 방송국이 만든 작품보다 더 감동적이다”는 입소문을 타고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졌다.
니혼TV에 따르면 밴쿠버 올림픽 이후 김연아가 가장 먼저 방문한 장소는 과천빙상장이었다. 김연아가 일곱 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시작한 곳이다. 니혼TV는 그곳을 ‘김연아의 원점’이라고 표현했다. 과천빙상장의 동판에는 김연아의 사인과 함께 ‘어린 시절 꿈과 희망을 키워준 곳!’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제2의 김연아’를 꿈꾸는 후배들이 은퇴를 고려하던 김연아를 움직였다는 내용도 있다. 2011년 7월 평창이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자 이듬해 7월 김연아는 다시 냉혹한 빙판 위 전쟁터로 나서기로 결심했다. 2년 만의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이다. 김연아는 “세계선수권에서 꼭 우승해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3월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합계 218.31점이라는 압도적인 점수로 우승해 약속을 지켰다. 그 덕분에 한국은 소치 올림픽은 물론이고 2014년 세계선수권 여자 싱글 부문 출전권 3장을 확보했다. 4년 뒤 평창올림픽의 주역들을 위해 김연아가 꿈과 희망을 선물한 것이다.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은 ‘아디오스 노니노’.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를 위해 강렬한 탱고를 선택했다.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던 2006∼2007시즌 김연아의 쇼트 프로그램은 ‘록산의 탱고’였다. 그는 21일 프리스케이팅에서 마지막 4조 중 마지막인 여섯 번째로 등장했다. 김연아는 평소 마지막 순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조 추첨 때마다 “마지막 순서만 피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정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처음 시니어 무대에서 섰던 그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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