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나라는 선수가 있었다는 것만 기억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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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2월 24일 07시 00분


김연아.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김연아.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 피겨 여왕의 은퇴…긴 여운을 남기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잊혀지지만 않으면 만족” 여왕의 겸손

“난 괜찮은데 주변에서 더 화를 내신다”
러시아의 점수 퍼주기 논란에도 의연

17년 선수생활 마감…“홀가분하네요”


“그냥…. 저라는 선수가 있었다는 것만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김연아(24·올댓스포츠)가 23일(한국시간) 열린 2014소치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갈라쇼를 끝으로 17년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결과는 모두가 기대했던 올림픽 2연패가 아니었지만, 현역선수로서 마지막 무대에 최선을 다했다. 최고의 모습으로 ‘작별’을 고한 김연아는 “경기가 마무리되고 그동안 노력했던 일들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판정에 대해서는 억울함도, 불만도, 미련도 없다. 나에게 메달 색이 중요한 게 아니다.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김연아는 12일 소치로 입성해 선수로서 마지막 일주일을 보냈다.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전과 달리 여유가 넘쳤다. 이유가 있다. 그녀에게는 다시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2010밴쿠버올림픽 금메달 이후 더 이상 피겨를 해야 할 목적의식을 잃어버렸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고, 은퇴도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녀가 다시 스케이트화를 신은 이유는 딱 하나, 후배들에게 기회의 장을 열어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2013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올림픽 출전권 3장을 따내 박소연(17·신목고)과 김해진(17·과천고)을 데리고 소치에 왔다.

외신기자들은 김연아가 공식인터뷰에 응할 때마다 올림픽 2연패에 대한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았다. “2연패는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그 목적으로 온 게 아니기 때문에 욕심이 없다.” 이 말에 거짓은 조금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김연아의 사전에 ‘대충’이란 단어는 없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클린 연기’라는 유일한 목표를 세우고 쉼 없이 훈련했고, 끝내 해냈다. 그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마치자, 전 세계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금메달은 러시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7)에게 넘어갔다. ‘점수 퍼주기’ 논란이 들끓었고, 외신들도 편파 판정에 대해 비난을 쏟아냈다. 당연히 받아야 하는데 억울하게 빼앗긴 금메달이었다.

가장 속상할 사람은 당사자였을 텐데, 김연아는 오히려 담담했다. “난 괜찮은데 주변에서 더 화를 내신다”며 “판정에 불만을 갖는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다. 쇼트나 프리에서 큰 실수 없이 연기를 마쳐서 그걸로 만족한다”고 의연하게 대응했다.

소치에서의 일주일, 피겨선수로서 김연아의 삶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이제 더 이상 경쟁대회에서 그녀의 모습은 볼 수 없다. 팬들은 아쉬움이 크겠지만, “지금까지 달려오기만 했다”는 김연아는 “홀가분하게”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김연아는 피겨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곱 살 때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었던 순간부터 피겨의 매력에 푹 빠졌다. 엄마를 졸라 링크에 가던 소녀는 남들보다 한 번 더 뛰고, 한 번 더 돌며 세계 최정상에 올라섰다.

김연아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피겨는 그녀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피겨를 통해 지금의 자신이 만들어졌고, 배운 점도 많다. 김연아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결과만큼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이 깨달음이 선수로서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모든 걸 내려놓는 김연아에게 마지막으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어떤 선수가 아니라 ‘나’라는 선수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피겨 여왕’, ‘밴쿠버올림픽 챔피언’, ‘소치올림픽 은메달리스트’, ….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스스로는 자신을 ‘어떤 선수’라고 규정짓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나라는 선수가 있었다는 것’이 남아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한다”고 얘기했다.

그게 바람이라면 이미 이뤄졌다. 그녀는 한국민들과 전 세계 피겨 팬들의 기억 속에 ‘역대 가장 아름다운 연기를 펼친 피겨선수’로 강렬하게 각인됐다. 그녀의 이름 석자는 피겨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장식돼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한 마리 나비와 같이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그녀의 스케이팅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소치|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트위터 @hong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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