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민주당의 옴니아’ 문재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4일 03시 00분


“새누리당은 사업 접은 노키아, 안철수신당은 아이폰 없는 애플
민주당은 옴니아로 헤매는 삼성”
삼성은 시대착오 모델 버렸는데 친노首長은 또 “노무현가치” 외쳐
受權보다 사상투쟁이 중한 세력… 대체 어떤 나라를 원하는 건가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잘못하면 옴니아 시절로 돌아간다.” 위기의식을 강조하는 삼성전자에선 ‘옴니아’가 일종의 상징어다. 쉽게 풀면, 시대착오적 제품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도태될 뻔했던 때로 되돌아갈 수 있으니 정신 차리라는 말이다.

옴니아는 2008년과 2009년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모바일 기반에 맞춰 삼성이 내놨던 스마트폰 초기모델이었다. 애플의 아이폰에 맞선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느려 터진 탓에 옴레기(옴니아+쓰레기)로 불리며 손해배상운동까지 벌어졌다. 애플, 구글에 밀린 MS가 퍼스널컴퓨터 기반의 윈도 운영체계를 크기만 줄여 휴대전화에 구겨 넣었으니 실패는 당연했다.

삼성에선 저주의 단어로 통하는 옴니아가 민주당에 등장했다. 지난달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의 변재일 원장을 통해서다. “새누리당이 노키아, 안철수신당이 아이폰 없는 애플이라면 민주당은 옴니아 만들고 헤매는 삼성”이라고 했다.

정보통신부 차관을 지낸 그가 옴니아 이후 상황을 모를 리 없다. 삼성은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는 시장 트렌드를 잘못 읽었음을 뼈아프지만 인정했다. 그러고 죽을 만큼 빠른 속도로 2010년 상반기 구글 안드로이드 기반의 갤럭시S 모델을 터뜨려 오늘의 삼성이 됐다.

어쩌면 변 원장은 옴니아보다 삼성에 방점을 찍고 싶었을지 모른다. 민주당엔 문재인 손학규 등 구(舊)대선주자에 박원순 안희정 송영길 시도지사 같은 신(新)모델까지 있지만 새누리당은 그런 후보군이 없으니, 결국 휴대전화 사업을 접어버린 노키아 꼴로 봤다.

문제는 지금의 민주당이 옴니아를 버린 삼성이 아니라, 삼성 없는 옴니아라는 데 있다.

삼성에선 2010년 초 이건희 회장이 복귀해 “까딱하면 구멍가게 된다”며 과감히 옴니아를 버렸다. 하지만 변 원장조차 “바지사장 김한길 대표가 뭘 해낼 수 있는지 불신이 있다”며 리더십 부재를 인정한 터다. 친노(친노무현) 세력은 옴니아를 여전히 신주단지처럼 떠받들며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다.

문재인은 최근 “친노는 없다”며 “친노 프레임을 극복할 해법은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가치를 사회의 주류 가치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간지 인터뷰에서 밝혔다. 자신이 수장(首長)격인 친노의 존재까지 부인하면 하는 수 없다. 실패를 상징하는 ‘민주당의 옴니아’로 부를 수밖에.

지역주의 권위주의 극복 같은 세상의 모든 선(善)이 노무현 가치라고 믿는 건 문재인 자유다. 그러나 미선·효순의 죽음 뒤 반미(反美)시위부터, 노 전 대통령의 정책을 왜곡해가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해군기지 반대 등등 그들이 주장한 바는 세상 흐름을 거스른 옴니아 모델이었다. 노 정부 때 유엔대표부 대사를 지낸 최영진도 그 바닥에 깔린 피해의식과 국수주의가 시대착오적이라고 ‘신조선책략’에서 지적했을 정도다.

사람 좋다는 평은 많되 유능하다는 평가는 못 받은 문재인이 또 나선 이유는 역시 그만 한 ‘친노의 도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노 정권 때 홍보기획비서관이었고 문재인을 대선후보로 끌어냈으며 문 캠프의 메시지팀장이었던 왕참모이자 ‘노빠들의 왕’ 양정철한테 문재인이 여전히 메시지를 자문한다는 소문도 나돈다.

마침내 ‘노무현 탄돌이’ 출신 정청래 의원이 지난주 문재인의 구원등판을 주장하고 나섰다. “손석희(jtbc 사장)는 악의 편에서 선을 눈앞에 보이려 한다”는 그의 글이 드러내듯 나라를 선악의 대결구도로 보는 집단이 당권을, 대권을 거머쥘 때 어떤 세상이 되는지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2004년 “노무현을 비난하면 적전(敵前) 분열행위,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법안을 훼손하면 해당(害黨)행위”라고 주장하던 옴니아 시절처럼, 탈레반 뺨치는 세계적 왕따 같은 시대로 후진하는 거다.

그가 문재인의 호위무사로 나선 그 자리에서 한국사회여론연구소는 진보 정체성 강화(9.9%) 아닌 민생정책 강화(41.5%)를 민주당 혁신과제로 발표했다. 북한 김정은에게 “북핵을 포기해야 산다”고 강조해도 소용없듯, 친노와 그들을 둘러싼 강경파에 “옴니아 포기”를 외쳐도 먹히지 않을 성싶다. 집권보다 사상투쟁이 더 중요한 집단에는 나라도, 국민도, 정당도 의미가 없는 모양이다.

어제 김한길 대표는 민주당의 3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진짜 핵심인 계파 청산은 빠져 있었다. 민주당이 옴니아를 혁신하지 못하면 국민이 민주당을 버릴 판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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