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25>여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6일 03시 00분


여뀌들
―정병근(1962∼)

다 필요 없어
제발 버려줘 잊어줘
우리끼리 잘도 자랄 테니깐,

눈 밖에서 더 잘 크는 놈들
모가지에 벌겋게 독 오른 놈들
목젖 가득 차오는 폐단을 주체할 수 없어
아무나 잡고 맞짱 뜨자는 놈들

모래밭에 떼거리로 서서
온몸을 긁고 있었다

무서워서 아들놈을 재촉하며 돌아오는데
야, 그냥 가냐. 그냥 가!
아스팔트 산책로에 들어설 때까지
등 뒤에서 감자를 먹였다

중랑천변 모래밭, 여뀌들

여뀌는 물을 따라 씨를 퍼뜨리는 한해살이풀로서 물가에서 자란다. 강한 매운 맛이 있어서 향신채로 쓰이는 그 잎을 짓찧어 물에 풀면 물고기가 배를 뒤집고 떠오른단다. 물고기같이 작은 생물에게는 독초일 테다. 사람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에 돋아나 거칠게 자라는 여뀌 같은 풀들을 우리는 잡초라고 부른다. 어른의 따뜻한 눈길에서 벗어나 잡초처럼 크는 아이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잡초라고 부르건 산야초라고 부르건, 여뀌만큼이나 관심 없다. ‘다 필요 없어/제발 버려줘 잊어줘’ 부르짖을 뿐이다. 그 아이들은 ‘눈 밖에서 더 잘 크는 놈들’이다. 눈에 띄면 뽑아버릴 테니까. ‘목젖 가득 차오는 폐단을 주체할 수 없어/아무나 잡고 맞짱 뜨자는 놈들’이 ‘모래밭에 떼거리로 서서/온몸을 긁고 있다’. 가진 것은 독기뿐인 무서운 아이들, 불량기 넘쳐 보이는 패거리를 중랑천변을 거닐다 맞닥뜨린 화자는 아들을 재촉하며 모래밭을 벗어나 아스팔트 산책로로 도망친다. 아이들의 독기가 화자의 등 뒤에서 잉잉거린다.

이 시가 실린 정병근 시집 ‘번개를 치다’에는 서울의 ‘아스팔트 산책로’ 밖 사람들의 초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때로 고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위험한 타자가 아니다. ‘좋은 경치 바위에게 다 주고/사지가 뒤틀린 채/사람 발 닿을 때마다/다부지게 몸 받치는 소나무’(시 ‘업(業)’에서) 같은 삶이나 ‘죽는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기어가는’(시 ‘나팔꽃’에서) 삶이 시 속 아이들의 주위 어른들 모습이다. 힘없고 기죽은 그들이 누구를 해친다면 그건 그 자신일 테다. 저 아이들의 여뀌 시절이 그저 한때이기를….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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