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타다’는 영어 ‘something(섬싱·무엇)’의 변형 한글 표기와 우리말 동사 ‘타다’가 합쳐진 신조어. 호감 가는 상대와 정식 교제에 앞서 핑크빛 감정을 주고받는 행위를 뜻한다. 연인은 아니지만 묘한 기류가 흐르는 상대를 ‘썸남’, ‘썸녀’라고 부른다.
온라인에는 “썸타는 오빠가 절 헷갈리게 해요” “썸타는 걸까요, 절 싫어하는 걸까요” “썸인지 아닌지 어떻게 확인할까요”란 질문이 줄줄이 올라온다. 사연을 읽어 보면 중고교생과 대학생 등 10대와 20대가 다수지만 30대 직장인의 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질문엔 ‘썸타는 상대 애태우기’부터 ‘썸 끌어내는 법’까지 구체적인 답글이 달린다. 중학교 교사 박모 씨(30)는 “썸타는 이성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이 요즘 10대들의 중요한 관심사”라고 전했다.
‘썸’은 대중문화 콘텐츠의 인기 코드로 떠올랐다. 인기 그룹 ‘씨스타’의 소유와 가수 정기고가 같이 부른 ‘썸’은 지상파 3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를 휩쓸었다.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네꺼인 듯 네꺼 아닌 네꺼 같은 나/이게 무슨 사이인 건지 사실 헷갈려’란 노랫말에는 ‘썸탄’ 남녀의 미묘한 심리가 나온다. 가수 케이윌도 신곡 ‘썸남썸녀’에서 ‘미뤄 고백이나 뭐 그런 진심은 우리 나중에 다 나누면 돼’라고 노래한다. 래퍼 포이도 ‘그렇구나’에서 ‘우리 관계 지금 썸타는 거잖아’라고 직설적으로 노래한다.
‘썸’을 소재로 한 개그 프로그램도 인기다. tvN ‘코미디 빅리그’의 인기 코너 ‘썸&쌈’은 사람들이 꿈꾸는 달콤한 ‘썸’과 실제 현실인 ‘쌈’을 대비해 보여준다. ‘코미디 빅리그’의 김석현 PD는 “‘썸’이 연애 전 단계로 자리 잡으면서 시청자들의 썸에 대한 공감과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왜 요즘 젊은이들은 유행처럼 ‘썸타는’ 걸까. 대학생 김영태 씨(25)는 “썸타는 것은 결국 ‘간’ 보는 것”이라며 “사귀자고 말할 자신도 없고 연애 비용을 부담할 능력도 안 되니 썸을 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대생 남영희 씨(25)는 “이별로 상처받기 싫어서 썸이란 단계를 즐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썸타기’에는 젊은 세대의 자기방어 심리가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인터넷 세대들은 깊게 한 명을 만나기보다 여러 명을 얕게 만나는 데 익숙해 연애와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 ‘세상물정의 사회학’의 저자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확실한 연애에 대한 두려움을 ‘연애가 깨졌다’보다는 얕은 단계인 ‘썸타다 엎어졌다’ 같은 가벼운 표현으로 해소하려 한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식 교제를 미루고 ‘썸’을 즐기는 데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이별이나 상처로 피해 보지 않으려는 자기방어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며 “쿨하고 영리해도 인생에서 한 번은 물불 가리지 않고 뜨거운 연애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