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를 검증하겠다고 밝히면서 한국과 일본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며 아베 총리를 직접 겨냥했다.
○ “한일 우정, 정치가 막고 있다”
박 대통령은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9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그동안 쌓아온 한국과 일본 국민의 우정과 신뢰를 정치가 막아서는 안 될 것”이라며 “양국이 아픈 역사를 딛고 새로운 번영의 미래로 함께 나갈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올바르고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한 나라의 역사 인식은 그 나라가 나아갈 미래를 가리키는 나침반”이라며 “진정한 용기는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평생 한 맺힌 억울함과 비통함 속에 살아오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는 당연히 치유받아야 한다”며 “과거의 역사를 부정할수록 (일본은) 초라해지고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3·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며 일본을 비판했지만 위안부 문제 등 구체적 언급은 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안부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일본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지난 시대의 아픈 역사에도 양국이 협력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 등을 통해 식민 지배와 침략을 반성하면서 미래로 나아가고자 했던 역사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를 검증하겠다고 나선 데 대해 한국 정부가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 발표 당시 한국 위안부 피해자 16명의 증언을 청취한 뒤 이를 바탕으로 “모집 이송 관리 등이 감언, 강압 등에 의해 총체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졌다”고 인정한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위안부 문제는 인류 보편의 여성 인권 문제로, 독도 같은 영토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박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수준의 비판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비판하는 데 할애한 분량은 지난해 430여 자에서 올해 900여 자로 늘었다.
○ 일본 우익의 반격
일본의 대표적 보수 우익 신문인 요리우리신문은 2일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박 대통령의 반일’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미국 등에서 한인들이 고노 담화를 바탕으로 과거 일본군이 소녀들을 강제 연행했다고 선전하고 일본의 명예를 손상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며 고노 담화의 수정을 촉구했다. 같은 날 산케이신문도 ‘고노 담화 검증, 철저히 해명해 조기에 수정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일본 집권여당인 자민당도 고노 담화의 검증을 기정사실화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간사장은 1일 나고야에서 기자들을 만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아직 건강할 때 이야기를 들어 진실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정부는 고노 담화의 내용이 아닌 작성 과정을 검증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공식 제의
박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을 향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공식 제안한 뒤 “남북이 작은 약속부터 지키며 신뢰를 쌓아서 통일의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올라가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 된 민족, 통일된 한반도는 민족의 독립과 자존을 외친 3·1운동 정신을 완성하는 것”이라며 “북한은 핵을 내려놓고 남북 공동 발전과 평화의 길을 선택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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