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3년]1년간 ‘출입제한’ 4km 줄어… 유령마을엔 가축들만 활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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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방사능 공포는 현재진행형

《 사망자 1만5884명, 행방불명 2636명.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할퀴고 지나간 상처는 크고도 깊다. 살아남은 이들의 몸과 마음도 편치 않다. 아직도 사고지역을 서성이는 이가 많다. 가족의 시신을 찾는 사람들이다. 삶의 터전을 뒤에 두고 피난 생활을 하는 사람은 무려 27만여 명. 이들의 삶은 여전할까, 아니면 바뀌었을까. 동일본 대지진 3주년을 맞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와 지진해일(쓰나미) 피해 현장을 다녀왔다. 사고 이후 매년 방문하는 곳이지만 갈수록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

지난달 25일 일본 후쿠시마(福島) 현 이와키(磐城) 시의 최대 항구인 오나하마(小名濱) 항구. 이곳에 즐비하게 들어선 횟집과 수산물 직판장에서 판매되는 생선 옆에는 가격만 표시돼 있다.

“모두 후쿠시마산이어서 원산지 표시를 안 하나요?”(기자)

“홋카이도(北海道)나 규슈(九州) 겁니다. 후쿠시마 근해에서 잡은 생선은 하나도 없어요. 이 지경이 된 지 3년이나 됐습니다.”(주인)

횟집도 예외가 아니다. 후쿠시마 현 근해가 아닌 곳에서 잡은 생선으로 요리를 한다. 오나하마 항구의 어선들은 일주일에 하루는 시험 조업에 나선다. 하지만 생선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돼 100% 폐기 처분한다.

이와키 시내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직선으로 약 38km 떨어진 곳. 동일본 대지진 당시 ‘피난 권고’ 경계선인 30km를 살짝 벗어나 있다. 그 ‘덕분’에 아무도 피난을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3년 뒤인 지금도 이와키 시는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이른바 ‘원전 마을’ 주민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와키 역에서 렌터카를 몰고 원전 방향으로 향했다. 차량 내비게이션에 찍힌 거리는 총 51km.

○ 원전 23km…인구 4분의 1 귀향

40분을 달려 도착한 히로노(廣野) 역. 역 앞에 있는 택시들은 부지런히 손님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인근 국숫집에서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인부들이 눈에 띄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모습이었다.

이곳에 대한 ‘피난 지시’는 2년 전 해제됐다. 지난해엔 병원 은행 등 기초시설과 인부들을 상대로 한 음식점 일부만 문을 열었지만 이번엔 파스타 가게와 케이크 전문점 등 기호품 매장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히로노 동사무소는 정상 기능을 되찾았다. 지난해 2월엔 임시로 나온 직원 10여 명만 있었다. 현재는 20여 명이 상주한다. 사고 전 5502명이던 이곳의 현재 상주인구는 1355명. 작년 이맘때의 713명에 비해 배로 늘었다.

히로노 역에서 방사선량을 측정해 보니 0.144μSv(마이크로시버트). 일반인의 인공방사선 피폭 한계는 연간 1000μSv이다. 하루 8시간 외부에서 일하면 피폭 한계는 시간당 0.190μSv에 이르는 셈이다. 히로노 정은 정상 수준이었다.

○ 원전 17km…아직도 오염제거 중

사람 사는 분위기는 히로노 정에서 끝났다. 5분가량 더 들어가자 빈집들이 즐비했다.

원전에서 17km 떨어진 나라하(楢葉) 정은 ‘피난 지시 해제 준비’ 구역(연간 방사선량 20μSv 이하)이다. 낮에만 사람들의 이동이 허가됐다.

대로변 도랑에서 오염된 흙을 퍼 담는 인부들을 만났다. “1년 전에도 오염 제거 작업 중이었는데 아직도 하느냐”고 물었더니 “폐기물 보관 장소가 없어 진도가 늦다”는 답이 돌아왔다. 후쿠시마 현 내 오염 제거 대상으로 지정된 지방자치단체는 47개 시정촌(市町村). 대부분 폐기물 보관 장소를 확보하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폐기물을 30년간 보관할 중간저장소를 찾고 있지만 어느 지자체도 선뜻 혐오시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나라하 정의 전반적인 방사능 수치는 0.2μSv 내외. 그리 높지 않다. 한 가정집 화단에 들어가 잡초에 측정기를 댔더니 0.681μSv까지 올라가다 그쳤다. 지난해 이 지역 낙엽의 수치가 0.989μSv까지 급격하게 올라가는 바람에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떠올랐다.

○ 원전 9km…시간이 멈춘 유령마을

원전에서 약 12km 떨어진 지점에 나타나는 도미오카(富岡) 정 푯말. 작년에 기자를 돌려보냈던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3월 도미오카 정 일부가 ‘피난 지시 해제 준비’ 구역으로 지정돼 낮에는 진입이 허용된다.

도미오카 정의 시계는 2011년에 멈춰 있다. ‘축 전국고교 종합체육대회 출장 헤이세이(平成) 22년(2010년).’ 도미오카 고교 정문 옆에 보이는 축하 간판에 표시된 날짜는 모두 대지진이 일어나기 1년 전인 2010년이다.

낡은 집들은 무너져 내리고 자전거에는 시뻘건 녹이 슬어 있다. 부서진 자판기 속에 있는 음료수는 그대로다. 꺼내 먹을 수 있지만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만난 돼지 때문에 긴장했다. 1시간 동안 2마리를 목격했다. 사고 직후 굶주린 가축들이 빈집을 습격하자 환경성은 지난해 11월부터 가축 포획에 나섰다. 도미오카 정은 4월부터 마리당 2만 엔(약 20만8000원)의 포상금을 내걸고 잡아들일 계획이다.

도미오카 정의 방사선량은 0.4μSv 내외로 꽤 높았다. 도로 옆 움푹 파인 곳에 쌓인 낙엽 더미의 수치는 3.853μSv. 도쿄(0.091)의 43배. 렌터카 안으로 뛰어 들어와 문을 닫으니 수치는 0.421μSv로 내려간다.

경찰의 지시를 어기고 도미오카 정에서 버려진 가축을 돌보는 마쓰무라 나오토(松村直登·54) 씨는 “사람 얼굴 보기가 힘들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원전 앞 8km에서 경찰이 출입을 막았다. 오염 제거 작업은 지속되고 있지만 지난 1년간 4km 진전했을 뿐이다.

후쿠시마=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동일본 대지진#방사능 공포#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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