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생존이 아니라 온전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 이 작품을 모든 노예제도로 고통받은 사람들과 오늘날 여전히 노예 상태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바친다.”
3일 오전(한국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 영국 출신 스티브 매퀸 감독(45)은 ‘노예 12년(12years a Slave)’으로 최고상인 작품상을 수상한 뒤 떨리는 목소리로 미리 준비해온 소감문을 읽어 내려갔다. 1929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시작된 이후 흑인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받는 최고상이었다.
배우 윌 스미스가 작품상을 발표하자 객석에선 커다란 함성과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제작자인 브래드 피트를 포함해 배우들은 무대로 함께 몰려나와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축하했고, 매퀸 감독은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폴짝폴짝 뛰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최다 수상작은 7개 부문을 휩쓴 ‘그래비티’였지만 스포트라이트는 3개 부문 수상에 그친 ‘노예 12년’에 집중됐다. 이 영화는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함께 여우조연상(루피타 니옹고)과 각색상(존 리들리)을 받았다. 매퀸 감독까지 수상자는 모두 흑인이다.
‘노예 12년’은 흑인에 의한, 흑인을 위한 작품이다. 영화는 1853년 미국에서 출간된 솔로몬 노섭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뉴욕에서 자유인으로 태어난 흑인 바이올린 연주자 노섭은 워싱턴에서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된다. 노섭은 루이지애나 주로 보내지고, 12년간 ‘플랫’이라는 가짜 이름의 노예로 살아간다.
그동안 아카데미는 흑인에게 인색했다. 1963년 ‘들백합(Lilies of the Field)’의 시드니 포이티어가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지만, 두 번째 수상자인 덴절 워싱턴이 나오기까지 39년의 세월이 걸렸다. 여우주연상도 핼리 베리가 2002년에야 처음으로 수상했다.
매퀸 감독의 개인사 또한 여느 흑인들처럼 차별과 고난으로 점철됐다. 카리브 해 트리니다드토바고와 그레나다 이민자 출신 노동자인 부모를 둔 그는 런던 서부의 드라이턴 매너 고교 재학 시절 인종차별을 당했다. 난독증과 약시가 있어 안대를 차고 다녔고,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그는 원래 미술가였다. 웨스트런던대, 첼시예술대, 뉴욕대 티시예술학교에서 미술과 디자인을 공부했다. 비디오 아티스트로 이름을 날린 그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1999년 영국 최고 권위의 아티스트에게 주는 터너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과 2011년 이와 관련해 대영제국훈장을 받았다.
매퀸 감독은 2009년 데뷔작 ‘헝거’로 칸 영화제에서 신인 감독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을 받으며 영화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2011년 두 번째 영화 ‘셰임’으로 이 영화에 출연한 마이클 패스벤더가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번엔 세 번째 영화로 오스카 트로피 중 최고의 상을 안았다. ‘황야의 7인’ ‘타워링’ ‘빠삐용’에 출연한 미국 배우 스티브 매퀸(1930∼1980)과 이름 철자가 같은 점도 특이하다.
미술가로서의 그의 이력은 작품에도 반영돼 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문제를 다룬 ‘헝거’, 섹스 중독자의 내면 붕괴를 다룬 ‘셰임’, 그리고 이번 작품까지 그는 비디오아트를 떠올리게 하는 롱테이크(장면을 끊지 않고 계속 보여주기)를 자주 사용했다. 유려한 미장센(화면 구성)도 그의 장기다.
이날 감독상은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 남우주연상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슈 매코너헤이, 여우주연상은 ‘블루 재스민’의 케이트 블란쳇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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