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협의할 남북 적십자 실무 접촉을 12일 갖자고 북한에 제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제의한 뒤 국무회의에서도 생사 확인과 서신 교환 등을 위해 북한과 협의하라고 지시하자 정부가 급해진 것 같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대가를 줄 것인지, 대화 채널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면밀히 따져보지 않으면 허탕만 칠 수도 있다.
정부가 적십자 채널에 대해 “중요한 것은 격이나 급이라기보다는 실질적으로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적 차원이 아니라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미끼’ 정도로 여긴다는 건 상식이다. 북한이 왜 지난달 고위급 접촉 때 통일부가 아닌 청와대 관계자가 나오라고 했겠는가. 더구나 북한이 김규현 대통령 국가안보실 차장의 상대로 실세인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내보낸 것은 금강산관광 재개와 비료 지원 등 더 많은 것을 얻어내겠다는 계산으로 봐야 한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하며 “통 크게 양보했다”고 한 것도 앞으로 청구서를 내밀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청와대가 직접 대화에 나선 데 대한 비판을 의식해 인도적 사안은 적십자에 맡기려는 것일 수 있지만 북한이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남북이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한 것은 1971년 8월 대한적십자사가 제의하면서부터다. 1972년 8월 제1차 본회담에서 남북은 이산가족들의 생사 주소 확인, 자유로운 방문과 상봉, 서신 왕래,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과 기타 인도적 문제 등 5개 의제에 합의했지만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회성 만남 이상의 해법을 찾지 못했다.
북한은 어제 담화에서 “대화에 목이 메어 로케트발사훈련을 중지하고 자위적인 핵 억제력을 포기할 우리 군대와 인민이 아니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속된 말로 ‘국물도 없다’ ‘약속을 지켜라. 우리도 지킬 것이다’, 이런 것들이 북한 측 위정자들에게 조금씩 전달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통일을 강조하다 보니 정부가 남북 관계에서 착시를 일으키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