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3년 8월 4일 아침, 대북송금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어떤 압박을 느꼈던지 정몽헌 회장이 현대그룹 12층 사옥에서 뛰어내려 갑자기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죽기 전 검찰에 남긴 진술 가운데는 그가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150억 원, 그리고 내게는 3000만 달러와 200억 원을 건넸다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진술을 토대로 정 회장 자살 일주일 뒤 나를 전격 구속했다. 나의 ‘진승현 게이트’ 연루 혐의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지 불과 한 달여 만이었다.
언론은 연일 나에 관한 기사로 도배질하다시피 했다. 박지원 장관에게 건넨 150억 원은 현대건설에서, 그리고 내게 전달한 돈은 현대상선에서 빼낸 일종의 비자금인데 박 장관은 남북정상회담 준비자금으로, 나는 총선 준비자금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검찰조사에서 정몽헌 회장은 2000년 1월 나에게 3000만 달러를 주었고, 2월에 200억 원을 주었다고 진술했으며, 그 대가로 나에게 요구한 것은 금강산 카지노와 면세점 허가를 받도록 지원해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정몽헌 회장의 진술서를 뒷받침하는 자료로 검찰이 제시한 것은 무기중개상 김영완 씨의 자술서와 이익치 회장의 진술뿐이었다.
우선 내가 정몽헌 회장에게 돈을 요구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내가 2000년 2월 말경 신라호텔 1층 커피숍에서 그를 만난 일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신라호텔 커피숍은 사람을 만날 때 당시 내가 주로 이용하던 장소였다. 그곳 종업원들은 나를 알고 있었고, 소위 ‘왕자의 난’으로 유명해진 정몽헌 회장 얼굴을 모르는 직원도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당시 식당 및 커피숍 지배인들은 하나같이 정몽헌 회장을 본 기억이 없다고 증언했다. ○3000만 달러, 200억원, 10억원
검찰에서 3000만 달러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이익치 회장이었다. 현대상선이 김영완 씨 명의의 스위스 은행계좌로 3000만 달러를 송금한 뒤 이를 출금해 나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총선자금으로 그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입증하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 검찰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내가 돈을 받았다는 2000년 1월 중에는 현대상선이 3000만 달러를 해외로 송금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현대상선이 스위스은행 계좌로 송금한 것은 2000년 2월 26일의 일이고, 그 금액도 2500만 달러로 내가 받았다는 3000만 달러와 차이가 난다.
둘째, 설사 그 2500만 달러가 김영완 씨의 스위스은행 계좌로 보내진 것이라 하더라도, 그로부터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내가 다시 200억 원의 거액을, 그것도 같은 명목으로 요구할 수 있었겠으며, 또 정몽헌 회장이 이를 군말 없이 들어주었겠느냐 하는 점이다.
더구나 그해 2월 28일엔 현대아산의 김윤규 사장이 나에게 “고문님께서 쓰십시오” 하고 10억 원을 직접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할 순 없으니 당에 전달하겠다”고 말하고 다음 날 당에서 영수증을 받아 그에게 전해주었다. 10억 원도 큰돈이다. 이 돈도 김윤규 사장이 정몽헌 회장과 상의해 가져온 돈이었거나, 아니면 정몽헌 회장의 심부름으로 가져온 돈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3000만 달러와 200억 원, 그리고 10억 원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나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인데, 아무리 내가 염치가 없다 해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그것도 같은 명목으로 3번씩이나 거액의 돈을 요구하고 받았다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었겠는가?
○김충식 사장의 잠적
내가 정말 김영완 씨를 시켜 정몽헌 회장에게 “3000만 달러와 200억 원을 달라”고 했다면 정 회장을 만났을 때 “김윤규 사장으로부터 10억 원을 잘 받았다. 그러니 10억 원을 제하고 190억 원만 달라”라든지, 최소한 “김윤규 사장으로부터 돈을 잘 받았다”는 인사말이라도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이 같은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셋째, 총선지원용이라면 나한테 직접 주면 되지 왜 그 돈을 해외계좌로 송금했느냐 하는 점이다.
넷째, 금강산 관광사업을 주관한 현대상선의 김충식 사장은 검찰에서 3000만 달러의 영수증을 (지인인) 미국인 위벌리 씨가 보관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만일 검찰이 진정으로 영수증을 확보할 의사가 있었다면 김충식 사장을 업무상 횡령혐의로 구속한 다음 미국인 위벌리 씨와 연락하게 해 영수증을 제출받을 수 있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김충식 사장과 그의 변호인이 영수증을 찾아오겠다고 하자 검찰은 두 사람의 출국을 허락했으며, 김충식 사장은 미국으로 떠난 뒤에 잠적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내 변호인 측의 문제 제기를 극복하지 못한 탓인지 검찰은 내가 3000만 달러를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선 기소조차 하지 못했다. ▼ 권노갑이 DJ지시 어겼다? ▼
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 초 어느 날, 새정치국민회의 권노갑 상임고문은 청와대에서 김대중(DJ) 대통령과 단 둘이 마주 앉았다.
권노갑=“현대에서 총선자금으로 100억 원을 도와줄 수 있다고 합니다.”
DJ=“(단호한 어조로) 쓰지 말게.”
권 고문은 김영완 씨를 불렀다. ‘현대가 총선자금으로 100억 원을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는 얘기는 김영완 씨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자네 혹시 100억 원은 받았는가? 받았다면 돌려주게. 혹시 받지 않았다면 (뜻은) 고맙다고 전해주게.” 권 고문은 그렇게 당부한 뒤 김영완 씨를 돌려보냈다고 했다.
권 고문은 다른 경로로 총선자금을 마련해 김옥두 사무총장에게 전달했다. 10억, 10억, 10억, 5억, 그리고 50억 두 번. 모두 135억 원이었다. 그중 두 번의 50억 원은 ‘독지가’ 두 명에게 “선거가 끝난 뒤 국고보조금을 받으면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빌린 돈이었다.
권 고문은 ‘현대비자금 200억 원 수수사건’ 재판과정에서 이런 비밀들을 모두 털어놨다. ‘독지가’ 2명의 신원도 밝혔다. 물론 현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결국 권 고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내려졌지만, 권노갑 사건은 무수한 의문을 남겼다.
DJ나 권노갑, 동교동계를 아는 사람들이 가장 납득하지 못하는 대목은 권 고문이 DJ의 지시를 어기고 현대자금 200억 원을 받았다는 점이다.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다.
권 고문의 측근인 이훈평 전 의원의 말. “두 양반이 평생 정치를 하면서 서로에게 말하지 않은 돈 문제는 딱 두 건뿐이다. 하나는 DJ가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20억 원을 받았던 일이고, 또 하나는 권 고문이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다. 서로 말 안 한 게 하나씩 되는 셈이지만, 권 고문이 정태수 회장의 5000만 원을 받은 건 DJ가 대선 패배 후 영국에 가 있을 때다.”
이 전 의원은 또 “권 고문이 평생 정치자금을 관리했지만 3000만 달러를 요구했다가 얼마 되지 않아 또 200억 원을 달라고 할 만큼 간이 큰 사람이 못 된다”고 말을 이었다.
권 고문의 변호를 맡은 이석형 변호사는 “권노갑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재판에 미친 영향이 70% 이상”이라고 말했다.
강창희 국회의장의 회고록(‘열정의 시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1997년 대선 당시 DJP연합에 따라 JP와 박태준 자민련 총재가 DJ 지원 유세를 벌였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러자 박태준 총재가 “우리가 몇십 년 동안 DJ는 의심스럽다고 교육시킨 효과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고 토로하더라는 것이다.
‘DJ가 의심스럽다’는 역대 정권의 세뇌교육엔 사상문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스위스 비밀금고에 엄청난 돈을 숨겨놨다더라’는 식의 의심도 꼭 따라다녔다. DJ에 대한 의심은 곧 권노갑에 대한 의심이기도 했다. ※바로잡습니다
◇지난주 회고록에 ‘김영완 씨는 정몽헌 회장과 중앙고·고려대 선후배 사이로 매우 친했다고 한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고(故) 정몽헌 회장은 서울 보성고와 연세대를 졸업했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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