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싱크탱크인 ‘미국신안보센터(CNAS)’가 최근 일본 총리실에 역사 수정 움직임을 중지하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전달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역사왜곡 행보에 강력한 견제구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동맹국인 일본과의 외교마찰을 피하려고 CNAS라는 간접경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12일 CNAS에 따르면 일본 총리실에 전달한 보고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치화하지 말고 역사 문제에 대한 검증 시한을 정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역사 문제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저명한 역사학자들의 몫이라고 못 박았다. 아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우파 학자들을 동원해 역사를 마음대로 재단하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다.
CNAS 보고서는 미국 정부가 최근 아베 정권의 우경화 움직임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는 시점에 작성된 것이어서 주목된다.
패트릭 크로닌 CNAS 아태안보소장은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행정부 관계자인지, CNAS 관계자인지 혼란스러울 만큼 (일본) 관련 논의를 정부 측과 깊숙이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CNAS의 보고서를 일개 싱크탱크의 목소리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미 행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강경한 대일 메시지를 잇달아 내놓는 것은 지난해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와 최근 고노 담화 수정 시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 국익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수준이라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미 행정부 소식통은 “중국과 한국의 강한 반감 속에서도 미국은 지난해 10월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 회의를 통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움직임)에 손을 들어줬지만 아베 총리는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며 “일본을 위해주려다 (미국이) 더이상 피해를 보지는 않겠다(stop bleeding)는 정서가 워싱턴에 팽배하다”고 전했다.
CNAS에는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아시아지역 국방정책을 총괄해 온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부 차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등 중량급 인사들이 이사진에 대거 포진하고 있다.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 대사도 CNAS의 자문단으로 활동했다.
이런 가운데 미일 간 다양한 물밑 협의를 진행해 온 미 행정부 소식통은 본보와의 11일 통화에서 “아베 총리실은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 문제 전반을 2월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실에 일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미국의 압력에 근본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해석은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많다. 오바마 대통령의 4월 방일을 앞둔 전략적 호흡조절일 뿐 ‘전후 체제’에서 탈피하겠다는 기본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정권에서 외교정책을 담당했던 한 외교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다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본질적인 태도 변화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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