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A 부장은 직장 내에서 악명이 높다. 실적이 안 좋으면 시도 때도 없이 회의를 소집하기 때문이다. 그의 부서는 주2회 정례회의를 하지만 최근에는 매일 저녁 다시 회의를 한다. 이 회사 직원 B 씨는 “회의만 한다고 안 좋은 실적이 좋아지느냐”며 “정작 본인은 위로한다며 회의 후 저녁을 사는데 거의 매일 그러다 보니 죽을 맛”이라고 푸념했다. B 씨는 “퇴근은 늦어지고, 회식으로 몸까지 피곤하니 다음 날 업무효율이 오를 리가 있겠느냐”며 “사장은 늦게까지 일한다고 칭찬하지만 오히려 회사를 망치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 ○ 회사를 좀먹는 ‘시간 도둑’
직장인들은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으로 ‘시간 좀도둑’ 같은 회의문화를 꼽았다. 한국생산성본부가 지난해 직장인 43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50.8%)이 ‘회의 효율화’를 지적했다. 회의는 필요하지만 사전 준비도 없이 열거나 회의만을 위한 회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회의가 너무 많다 보니 일보다 회의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정작 ‘소는 누가 키우나’는 식이 된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중견기업은 지난해부터 ‘아침 스탠딩 회의’를 도입했다. 사장의 도입 이유는 업무 효율화. 업무시간 중 수시로 열리는 쓸데없는 회의를 줄여 시간 낭비를 막고 업무도 효율화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이 회사 직원 중 스탠딩 회의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오히려 전날 한 일에 대한 ‘지적 회의’가 하나 더 생긴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이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 C 씨는 “기존 회의도 다 약간씩 만든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하나도 없어지지 않았다”며 “오히려 매일 야단맞는 회의만 하나 더 생겼다”고 말했다. C 씨는 “거래처를 다니며 물건을 팔아야 할 시간에 회의를 하고 있다”며 “어쩔 수 없이 밤에 남아 일처리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회식도 시간 낭비와 업무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주범. 간부가 생각하는 ‘팀워크’는 일부 충성 직원들에 한할 뿐 대부분의 직원에게는 고역이다.
지난해 여름 방위사업체 납품업체로 이직한 D 씨는 6개월 만에 식도염과 위염에 걸렸다. 주범은 저녁에 항상 이어진 회식. 부서 회식, 소규모 팀 회식, 선후배 회식 등 종류도 다양했다. 코스는 1차 식사, 2차 호프집, 3차 노래방.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늘 오전 1∼2시였다. 그는 “피로 때문에 업무효율성이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야근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며 “진단 결과 역류성 식도염으로 나와 몇 달간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 아이가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들
직장인들의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시간 통제감(스스로 시간을 관리하고 있다는 확신)’이 낮기 때문이다. 아래 직급일수록 이는 더 낮아진다. 삼성경제연구소가 회사원 1776명을 설문조사 한 결과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컨트롤하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절반 정도(53%)에 그쳤다. 특히 사원·주임급은 44%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E 씨. 그와 그의 부서 직원들은 일이 없어도 습관적으로 저녁을 먹고 다시 회사에 들어온다. 툭하면 한마디 던지는 상사 때문에 하루 종일 처리한 일도 다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 씨는 “상사가 며칠 전에 보고서를 올려도 꼭 전날 저녁에 보고 수정 지시를 하기 때문”이라며 “부서 근무 초기에 잘 모르고 퇴근했다가 도로 불려온 것이 수도 없어 아예 밤늦게까지 남아 있는 것이 모두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관리자들의 비효율적인 업무 방식은 자신뿐 아니라 부하직원의 능률에도 영향을 미친다.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상사의 업무스타일 중 가장 비능률적인 부분은’이라는 질문에 약 40%가 ‘계획성 없는 업무지시’를 꼽았다. 상사가 던진 갑작스러운 과제로 인해 직원 개인의 업무 흐름이 깨지고, 일이 밀리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맥킨지컨설팅은 2013년 경영진의 시간활용 실태를 조사한 뒤 “경영자의 50%는 전략적인 일보다는 불필요한 업무에 시간을 쏟고 있다”며 “관리자급의 시간관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업무와 관계없는 사장 개인의 취향 때문에 생기는 비효율도 있다.
중소기업인 F사에는 한 달에 이틀씩 ‘환경 미화의 날’이 있다. 이날이 되면 전 사원이 책상과 캐비닛을 말끔히 정리해야 한다.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불필요한 물건을 없애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업무능률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직원은 오히려 업무능률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환경미화의 날에는 사장이 일일이 직원들 책상을 돌아다니며 정리 상태를 확인하고 불호령을 내리기 때문에 전날 미리 청소를 하느라 야근을 하기 때문이다. 직원 이모 씨(35)는 “회사에서는 ‘워크스마트(work smart)’를 위해 도입했다고 하지만 도리어 쓸데없는 시간을 쏟게 된다”며 푸념했다.
황창연 한국경제경영연구원장은 “중복적인 업무, 불필요한 절차를 개선하지 않을 경우 능률을 떨어뜨리는 시간이 축적된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전자결재라인 활성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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