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수업을 마친 서울의 모 대학 2학년생 남모 씨(20)가 찾은 곳은 1.6m²에 못 미치는 화장실 칸이다. 편의점에서 산 김밥 한 줄과 음료수가 남 씨의 점심 메뉴였고 뚜껑을 닫은 세라믹 변기가 식탁이었다. 학과 및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아 친구가 적은 남 씨는 신입생이었던 지난해부터 이렇게 화장실에서 점심을 때울 때가 많다.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선택한 습관이지만 간혹 ‘왜 숨어서 식사해야 하나’라며 서러워할 때가 있다.
새 학기를 맞아 활력이 도는 캠퍼스의 한구석에는 점심을 ‘혼밥(혼자 먹는 밥을 뜻하는 은어)’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숨기기 위해 화장실이나 빈 강의실 등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찾아 헤매는 이들이 있다. 이런 ‘혼밥족’ 중에는 남 씨처럼 또래 친구들과 한 교실에서 같은 일정으로 생활했던 중고교 시절에 익숙해져 있다가 대학 생활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지난 학기 복학생 임모 씨(25)는 “정신을 차려 보니 한 학기가 다 지나가도록 휴대전화에 대학 친구의 전화번호가 10개도 저장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간관계가 점차 개인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혼밥족’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식사는 여럿이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인식과 충돌을 일으킨 탓에 몰래 끼니를 때우는 모습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식재료 보관이 어려워 여럿이 함께 밥을 먹었던 과거 습관이 뿌리 깊게 남아 있어 혼자 식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 탓에 주변 사람과 관계를 스스로 단절하고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자발적 혼밥족’도 많다. 이들은 밥을 혼자 먹으면 △식사 약속을 잡거나 식당을 찾는 데 허비되는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원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성균관대 재학생 김누리 씨(24·여)는 “‘혼밥’에 익숙해지면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을 찾는 데 쓸 에너지를 아끼고 수업준비 등 생산적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대학가에는 이런 ‘혼밥족’을 위한 식당도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대학가 ‘혼밥족’의 모습은 자신의 생활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공유하는 ‘인증 놀이’와 결합해 ‘혼밥 인증’이라는 독특한 문화로 재탄생하고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이달 초부터 각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화장실과 벤치 등에서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올린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위안을 얻고 더 나아가 ‘밥은 식당에서 여럿이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데서 쾌감을 느끼려는 행위”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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