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생소한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원자력방호방재법)’ 개정안이 여야 대치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은 박근혜 대통령이 24, 25일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전 이 법을 통과시키려고 총력전을 펴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직접 나섰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동남아 순방을 위해 18일 출국하려다 일정 자체를 전격 취소했다. 법안 하나를 위해 총리와 의장이 애를 태우는 이례적 상황이다. 이렇게 중요한 법안을 왜 이제껏 방치했던 걸까. 정부 여당의 어설픈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 이 법안이 도대체 뭐기에
개정안은 핵 범죄 구성 요건과 위법행위에 따른 처벌 사항을 명확히 하고 있다. 법안 내용 자체는 특별한 게 아니다. 문제는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핵테러억제협약 비준서를 유엔사무국에, 핵물질방호협약 비준서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제출해 국제적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약속이 중요한 것은 2012년 3월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당시 의장국이었던 우리나라가 두 협약을 비준하겠다고 각국 정상 앞에서 공약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이 약속에 대한 이행 여부를 발표해야 한다. 결국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한국의 ‘대외 신인도’가 떨어진다는 게 여권의 주장이다. 여권이 서두르는 이유도 박 대통령이 ‘국제적 망신’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데 있다.
○ 미숙한 여권, 막무가내 야당
개정안이 발의된 것은 2012년 8월이다. 18개월 넘게 잠들었던 법안이 지난주부터 집중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의 네덜란드 방문을 2주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정 총리는 14일 강 의장과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다. 17일에는 직접 국회를 찾았다. 정 총리는 전 원내대표에게 “시급성을 (사전에) 충분히 설명 못 드린 점을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국가의 체면을 고려해 대승적 입장에서 법안을 처리해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강경하다. 원자력방호방재법만을 처리하는 ‘원포인트’ 국회에 반대하고 있다. 그 대신 방송법 개정안을 포함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가 합의한 112개 법안을 함께 처리하자고 주장한다. 위헌 시비를 낳은 방송법 개정안은 2월 임시국회 내내 여야가 맞선 법안이다. 이 때문에 112개 법안 모두 통과되지 못했다. 일괄 처리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는 게 여권의 주장이다.
새누리당은 단독으로 20일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했다. 하지만 여야가 의사 일정을 합의하지 못했다. 야당은 응할 생각이 없다. 결국 새누리당은 이날을 ‘디데이(D-Day)’로 잡고 야당을 압박하겠다는 계산이다.
○ ‘거짓말 공방’으로 비화
여야의 책임 공방도 거세지고 있다. 전 원내대표는 “내가 원내대표를 하는 동안 원자력방호방재법 처리가 시급하다는 요청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며 “야당이 발목 잡고 있다는 것은 비신사적이고 파렴치한 태도”라고 주장했다.
여권의 설명은 전혀 다르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2월 국회 당시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장이 여야 원내대표와 미방위원장, 미방위 여야 간사 등에게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했다”며 “민주당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는 53개국 가운데 두 협약을 비준하지 못한 국가는 16개국이다. 여기에는 미국도 포함돼 있다. 두 협약을 비준하지 못했다고 해서 국제적 불이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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