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통일코리아 프로젝트 2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北 떠난뒤 새로 만난 세상, 탈북자 60인의 증언
남녘에 정착한 사람들
‘향수’는 있지만 ‘귀향’은 없다.
탈북자들에게 북한은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 비치지 않았다. 동아일보·아사히신문 특별 공동취재팀이 만난 60명 중 “통일이 된 뒤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답한 사람은 13명에 불과했다.
오유정(가명·41·여) 씨는 “내가 남한에 온 뒤 어머니가 보위부에 세 번이나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지난해 1월 네 번째 조사를 앞두고 ‘이번에는 못 나올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약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며 “북한 쪽으로 등도 돌리기 싫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과거의 살았던 정(情)까지 모두 끊기는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 앞서 경험한 남한
탈북자의 상당수는 남한에서 겪은 자본주의 경험을 고향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 남한에 온 지 10년이 된 윤아영 씨(32·여)는 “남북한에서 다 살아봤기 때문에 양쪽 사람들이 잘 융합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북한 사람들이 남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상담사 일을 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선전 학습강사로 일했던 이성심 씨(64·여)는 탈북자들을 상대로 하는 남한 홍보 자격증을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식 경쟁으로 인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탈북자들도 있었다.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인 이상현(가명·23) 씨는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해 줄 자신이 없다. 북한에 계속 살았다면 이곳에서만큼 잘 먹지는 못해도 한 가족의 가장으로 살 수 있었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일부는 북한에서 엘리트로 살았던 이들이 남한에 와서도 손쉽게 돈을 버는 모습에 실망감을 표현했다. 배가 고파 북한을 떠나 온 대다수는 남한 사회에서도 비숙련 노동자로 적은 임금을 받지만 엘리트들은 ‘북한 고위층의 실상’을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고 고급정보를 팔거나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이다.
○ 자녀 교육은 공통 고민
부모의 고민은 남과 북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14세 딸을 둔 서수연(가명·45·여) 씨는 “애가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다며 국영수 학원을 보내줄 수 없냐고 묻지만 월세를 내고 나면 생활비도 빠듯하다”며 학비 고충을 털어놨다.
어린 자녀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해 이직하기도 한다. 탈북 여성과 결혼해 맞벌이를 하고 있는 이성재(가명·34) 씨는 1년 전부터 공기업 시험을 준비 중이다. 컨설팅회사에 근무하는 아내의 퇴근시간이 늦고 불규칙해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두 아들을 보살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에 초점을 맞춘 교육을 받았던 10, 20대 탈북자들은 ‘상식’의 부족을 호소했다. 김은솔(가명·19·여) 씨는 “북한에서는 아무리 좋은 대학 출신이라도 남한에선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말했다. 김 씨는 “탈북한 뒤 부모 없이 혼자 사는 청소년들은 애정결핍도 많이 느낀다. 어머니같이 따뜻하게 아이들 생활 전반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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