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영화평론은 죽었다. 평론가의 권위는 더이상 인정받지 못하며, 대중은 자신들의 취향과 괴리된 난해한 평론을 ‘있어 보이는 것’으로 여기는 대신에 ‘그래, 네 팔뚝 굵다. 잘났다’며 외면해 버린다.
영화평론의 위기는 비단 국내의 일만이 아니다. 얼마 전 칸영화제에서 만난 프랑스 권위지 르몽드의 영화평론가는 “예술의 나라인 프랑스에선 영화평론가들이 먹고살 만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프랑스 대중 사이엔 이런 말이 농담처럼 돈다. ‘르몽드가 칭찬한 영화만 쏙 빼고 보면 다 재밌다’는 말이. 여기서도 평론은 벼랑 끝에 서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평론가로서 ‘같이 망해간다’는 안도감에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이제 많은 대중은 비평가의 글보다는 다른 관객들이 인터넷에 댓글로 올리는 100자 안팎의 관람후기를 보고 그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한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영화 홍보를 위해 음성적으로 ‘댓글 알바(아르바이트)’를 동원하는 폐해가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 그러면 인터넷에 달리는 관람후기 댓글은 과연 얼마나 믿을 만할까? 1월 말 개봉됐던 한국영화 ‘조선미녀삼총사’를 살펴보자.
단언컨대, 이 영화는 근래 내가 본 한국영화 중 최악의 작품이요, 악몽 그 자체였다. 하지원, 강예원, 손가인(가수 출신), 고창석, 주상욱, 송새벽 같은 스타들을 줄줄이 등장시키고도 이런 눈뜨고 볼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오히려 비상하게 생각되는 수준이었다. 인터넷에 달린 관람촌평도 가히 ‘악마적’이었다. “이 영화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순간은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이었다”에서부터 “구정에 부모님 모시고 오랜만에 영화 보러 갔다가 귀싸대기 맞을 뻔했네요. ‘왜 얼마 남지 않은 귀한 인생을 낭비하게 만드냐’고요”까지…. 심지어 “이 영화는 제가 본 영화 중 최고의 영화입니다. 여러분 꼭 보세요. 물귀신 올림” 혹은 “바로 잤다. 불면증 환자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영화” “경찰에 신고해 버리고 싶은 영화” 같은 크리에이티브한 댓글도 있었다.
이런 악평이 절대적인 가운데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두둔의 글’도 눈에 들어왔다. “하지원. 멋져 멋져” 같은 초딩(초등학생) 수준의 댓글은 넘어간다 쳐도 “(이 영화를) 만드신 분들의 정성을 생각해야 한다. 비난하면 안 된다”는 착한 체하는 댓글은 공분을 자아내는 수준이다. 세상에! 만약 그렇다면 지구상 어떤 영화를 비판할 수 있을까. 불량식품이나 필로폰도 ‘만드신 분들의 정성’을 생각해야 하느냔 말이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진 알겠으나 도무지 용서할 순 없는 4차원 영화 ‘몬스터’에는 매우 신선하고 창의적인 댓글도 달린다. “칠레산 족발 같은 영화”(영화 속 살인마는 칠레산 족발을 마구 휘두른다. 오 마이 갓!) 같은 촌평은 “러닝타임이 12년으로 느껴졌다”(‘노예 12년’)와 더불어 센스 철철 넘치는 댓글. “비빔밥을 물 말아 먹은 기분”이란 서정적인 댓글도 있고, 심지어 “유머가 내용과 잘 섞이질 못했다. 언제 치고 빠져야 하는지에 대한 센스가 약했음” “난감한 오싹함” 같은 전문가 수준의 촌평까지 달린다.
관람후기 중 가장 짜증나는 종류는 “아들이 재미있다고 하네요”나 “나름 볼만해요” “오빠는 재밌대요”와 같은 것들. 도대체 보란 말인지 보지 말란 말인지 속이 터져버리겠단 말이다.
최악의 댓글은 “문정희가 범인이에요”(‘숨바꼭질’) “안경 쓴 놈이 범인이에요”(최근 개봉한 한 스릴러 영화. 제목은 밝히지 않겠다) 같은 종류들. 영화의 결말을 기습적으로 공개해 다른 사람들의 보고 싶은 마음을 싹 가시게 만드는 사악한 댓글들로,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에요”(‘식스센스’) “백윤식이 진짜 외계인이에요”(‘지구를 지켜라’) 같은 용호상박의 스포일러가 아닐 수 없다.
자타공인 아무리 후진 영화라도 ‘알바’로 의심되는 호평의 댓글이 달리는 경우도 있다. 가장 많은 형태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어요. 너무 재밌었어요. 꼭 보세요. 강추예요”나 “별로 기대 안 하고 봤는데, 의외로 재밌었어요” 또는 “영상미 쩔고 전투신도 쩔어요”(‘쩐다’는 ‘매우 좋다’는 뜻의 은어) 같은 영혼 없는 글들. “호불호가 갈릴 것 같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짱이에요”처럼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연막전술’을 펴기도 한다.
“30대 초반 여성인데, 이 영화 주인공들 이야기에 짱 공감! 강추”처럼 자기가 ‘30대 여성’이라는 둥 ‘평범한 주부’라는 둥 자신의 정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체하는 댓글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려는 의도가 다분한, 매우 ‘의심스러운’ 종류라고 볼 수 있다. “꿀잼”(‘굉장히 재밌다’는 뜻) “완존 최곳”(‘완전 최고’) “재밌당” “재밌쪄요” “볼만했어염” 등 심하게 귀여운 체하는 댓글도 의심해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알바’로 의심되는 댓글이면서도 한 번 읽는 순간 발목 잡히면서 그 영화를 도무지 보지 아니할 수 없게 되는 치명적인 종류의 글이 하나 있다. “진짜…너무…잔인해요. 그리고…야해요”가 바로 그것. 잔인한 데다 야하기까지 하다는데, 게다가 ‘…’으로 감질나게까지 하는데 어찌 아니 볼 도리가 있단 말인가. 아! 꺼진 댓글도 다시 봐야 하거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