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체제서 살아온 탈북자들, 자유-책임 낯설어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8일 03시 00분


[통일코리아 프로젝트 2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한국 정착 돕는 상담사 전지원씨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마음 필요… 지원중심 정책, 자립중심으로 바꿔야

“입국 전 다리를 다쳤는데 왜 국가에서 아무것도 안 해주나. 빨리 나를 병원에 데려가 달라. 내가 병원에 가 있는 동안 내 직장에서 대신 일해 달라. 국가나 재단이 왜 있는 거냐.”

늦은 밤 남북하나재단 종합상담센터에 걸려온 한 탈북 여성의 전화. 중국을 통해 탈북해서 한국에 온 지 1년이 채 안된 이 탈북자는 다짜고짜 이렇게 화부터 냈다. 탈북자의 한국사회 정착을 돕는 이 센터의 전문 상담사 전지원 씨(44·사진)가 최근 겪은 일이다.

보통 사람이 들으면 황당할 법한 얘기였다. 전 씨는 그런 요구가 왜 무리한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한밤중의 통화는 그렇게 1시간 넘게 이어졌다. 결국 탈북자는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전화를 끊었다.

“북한 체제가 많이 이완됐지만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이잖아요.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와 자유, 그에 대한 책임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죠. 북한은 망가졌지만 한국은 잘사는 나라니까 다 해줘야 한다는 인식도 강하고요.”

전 씨는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탈북자 정착지원 정책 방향을 ‘지원 중심’에서 ‘자립 중심’으로 바꿔 탈북자 스스로 능력을 키우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 요구를 안 들어주면 ‘폭파시켜 버리겠다’든지 하는 거친 말과 욕설도 많이 나오죠. 하지만 이상하게 보기 전에 이해해야 해요. 북한은 국가와 당에 개인 의견이나 감정을 표출하면 벌을 받는 억압체제잖아요. 오랫동안 감정을 억제당하다가 얘기를 들어주는 한국에 오자 눌린 감정이 터져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전 씨는 “처음엔 나도 화부터 내는 탈북자들에게 겁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체제에서 왔기 때문이란 걸 깨달으면서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한국 생활은 이렇다’고 설득하면 일반 한국인보다 더 빨리 수용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탈북자가 한국에 잘 정착하고, 한국 사회는 그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작은 통일’은 어떻게 하면 빨리 이룰 수 있을까.

“새 체제에서 이질성을 극복하고 한국인으로 함께 사는 데 당연히 시간이 걸립니다. 그 시간을 기다려주겠다는 마음이 필요해요. 그래야 서로 이해하고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탈북자#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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