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난 사람]성형외과 남자 실장 정근우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5일 03시 00분


“여자친구 코수술 이해 못했는데… 요즘엔 제가 권해요”

정근우 씨(오른쪽)는 남성으로는 드물게 성형외과 실장 세계에 뛰어든 사람이다. 그는 남성 손님에게는 믿음직스러운 형처럼, 여성 손님에게는 따뜻한 남자친구처럼 다가가는 전략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정 씨가 여성 고객에게 가슴 보형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정근우 씨(오른쪽)는 남성으로는 드물게 성형외과 실장 세계에 뛰어든 사람이다. 그는 남성 손님에게는 믿음직스러운 형처럼, 여성 손님에게는 따뜻한 남자친구처럼 다가가는 전략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정 씨가 여성 고객에게 가슴 보형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오빠. 나 정말 하면 안 될까? 코 수술하면 인상이 또렷해진대. 취업에 도움 될 거야.”

어김없이 시작됐다. 여자친구의 성형타령 말이다. 그럴 때마다 이 남자는 주저하지 않고 돌직구를 날렸다. “코 수술하면 너랑 절대 결혼 안 한다.”

한세대 국제관광과 재학 시절 정근우 씨(28)는 성형수술 문제로 여자친구와 자주 다퉜다. 성형은 내면의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하는 사치라 여겼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 본연의 욕망을 잘 몰랐던 것. 그가 훗날 미용성형 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정 씨는 대한민국 성형의 중심인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JK성형외과에서 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실장은 환자 모집, 상담, 수술 후 관리까지 담당하는 성형업계의 마당발 역할을 하는 자리다. 더구나 대부분 여성이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전문의 5명 이상의 대형 성형외과 30곳을 확인한 결과 남성 실장은 정 씨가 유일하다.
‘의료관광 전사’ 포부 품고 성형업계 입성

성형에 보수적이었던 그가 성형업계 취업을 결심한 것은 의료관광 분야로 진출하겠다는 꿈이 생기면서다. 국내 의료관광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미용성형계를 모르고서는 꿈을 펴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사설 학원에서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영어 일본어 등을 익히며 취업을 준비하던 중 기회가 왔다. 2012년 12월 한세대와 JK성형외과의 산학협력 인턴 프로그램에 선발된 것. 당초 여성 3명만 뽑을 예정이었지만 정 씨의 남다른 열정을 눈여겨본 병원은 그를 선택했다. 3개월 인턴 과정을 마친 정 씨는 지난해 3월 당당히 정규직 코디네이터(실장 전 단계)가 됐다.

취업의 문을 통과했다는 기쁨도 잠시. 가족과 지인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취업을 축하하기 위한 고교동창 모임에서는 “의사도 아닌데…. 남자 녀석이 그런데 가서 뭐하냐?”는 비아냥거림도 나왔다. 정 씨는 다짐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노라고.

실제로 고객의 80% 이상이 여성인 성형외과에서 남성 성형외과 실장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형외과의 상담은 고객이 가장 감추고 싶어 하는 콤플렉스까지 끄집어내 어루만져 줘야 하는 예민한 과정이다. 남성이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힘든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주경야독 코디네이터 시절

정근우 씨는 “사람들의 마음의 병까지 치유해줄 수 있는 성형 도우미가 되고 싶다”고 했다. 병원 로비에 있는 조형물처럼 환자들이 아름다워지기를 기원하면서 포즈를 취한 정 씨.
정근우 씨는 “사람들의 마음의 병까지 치유해줄 수 있는 성형 도우미가 되고 싶다”고 했다. 병원 로비에 있는 조형물처럼 환자들이 아름다워지기를 기원하면서 포즈를 취한 정 씨.
남성들이 가지 않는 길에서 홀로 서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먼저 정식 실장이 되기 위해 혹독한 교육과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코디네이터에서 실장으로 진급해야 자기 환자를 모집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코디네이터 생활은 말 그대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이었다. 낮에는 병원의 온갖 일을 처리하면서 밤에는 각종 성형수술법, 약품, 의료기기 등을 숙지해야 했다.

쌍꺼풀 수술만 해도 절개 없이 눈 끝을 집어서 하는 매몰법, 부분절개법, 완전절개법, 눈매교정 등 여러 가지. 환자 유형에 맞게 적절한 수술법을 권하려면 의료인 못지않은 지식을 갖춰야 했다. 정 씨는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일한 뒤 밀린 공부까지 하고나면 대중교통이 끊길 시간이 됐다”며 “주말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도서관에 갔는데 고등학교 대학교 때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성형 공부를 하면서 여자친구의 ‘과거’까지 알게 됐다. “성형한 적 없다”고 잡아떼던 여자친구의 눈이 아무래도 이상했던 것이다. 정 씨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다. 처음엔 부인하던 여자친구도 결국 성형 사실을 인정했다”며 웃었다.

그는 1차례 진급 시험에 떨어지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1월 정식 실장 직함을 달았다.
남자 성형외과 실장의 생존법

정근우 씨가 턱에 보톡스 시술을 받은 여성 손님에게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정근우 씨가 턱에 보톡스 시술을 받은 여성 손님에게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남성 실장으로서의 강점을 살려야 했다. 최근 성형외과를 찾는 남성 고객이 크게 늘고 있다. 여성 시장이 이미 혼탁해진 레드오션이라면 남성은 블루오션인 셈이다.

남성 고객에게는 편안한 형 같은 느낌과 신뢰감 있는 이미지를 동시에 주려고 노력했다. 상대적으로 남성은 한 번에 수술을 결정하는 비율이 낮다. 때문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선에서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번은 얼굴 윤곽 수술을 원하는 고등학교 3학년생 아들이 성형을 반대하는 어머니와 함께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찾아왔다. 둘은 상담실에서까지 티격태격하다 돌아갔다. 정 씨는 포기하지 않고 어머니와 문자 상담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여성이었다면 못 믿었을 것”이라며 아들의 수술을 허락했다.

여성 고객에게는 포근한 남자친구처럼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 향수를 뿌리고 구강청결제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 상담을 할 때는 커플링도 잠시 뺐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여성들도 한번 고객이 되면 다시 정 실장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40대 중반 이상 중년 여성들의 지지는 가히 절대적. 동료 여성 실장들은 이런 현상 때문에 정 실장을 “정 언니”로 부른다.

아줌마들의 사랑을 받는 정 실장에게도 아직 적응이 잘 되지 않는 때가 있다. 바로 가슴 수술 상담 시간이다. 중년 고객들은 젊은층에 비해 더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 정도 사이즈면 남편이 좋아할까요?” 수준의 질문은 기본. “남편이 성형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최대한 모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난감한 질문을 쏟아내는 고객도 많다. 정 씨는 “프로답게 최대한 차분하게 고객들을 대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적 갈등을 겪을 때도 있다. 비용을 고민하는 환자를 만날 때 특히 그렇다.

고객들은 대개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의 수술법을 제시할수록 쉽게 결정을 내린다. 조금 비싸지만 고객에게 필요한 수술을 권할지, 아니면 싼 가격에 여러 건의 계약을 맺을지 고민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특히 실장이 계약 건수, 매출 등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 병원일 경우 박리다매(薄利多賣)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정 씨는 많은 동료 실장들이 유혹에 잘 빠지는 신체 부위로 코를 꼽았다. 코 부위에 사용되는 재료들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싼 재료로 박리다매를 하면 인센티브가 더 많이 생기므로 이 분야에선 비싼 재료 사용을 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인센티브제가 없는 병원에서 일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과잉계약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소신껏 환자들에게 맞는 수술법을 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슴이 아플 때도 적지 않다. ‘이 부위는 안 해도 된다’고 했는데 결국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했다가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찾아오는 환자를 볼 때다. 만성 축농증 환자의 코 수술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 씨는 “만성 축농증 환자에게는 성형수술 이전에 이비인후과적인 치료부터 먼저 하는 것이 좋다”면서 “이러한 적절한 조치 없이 코를 무작정 높여 염증이 아주 심해진 환자가 더러 있다”고 말했다.
의료관광의 첨병을 꿈꾸다

정 씨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의료관광객에게 한국의 의료기술을 알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포부다. 그는 “해외에 진출한 현지 병원에서 근무하기 위해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병원 행정 능력까지 키워 보건산업계 발전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3시간이 넘는 인터뷰 말미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제 여자친구가 성형수술을 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던져봤다. 대답에서 정 실장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단순히 외모의 변화를 위해서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하겠다. 하지만 마음의 병까지 치유할 수 있는 거라면 허락하고 싶다. 단, 실장의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는 곳에서만.”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성형외과#남자 실장#정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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