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디자인의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모델을 세계 시장에 매달 200개씩 내놓고 있습니다. 세계 유명 보석상 중에 우리 제품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백경학 코아쥬얼리 대표(56)는 4일 “도면대로 제작해 달라는 해외 주문은 일절 받지 않는다”며 “오직 우리 회사가 디자인한 제품만 판다”고 말했다.
16년째 수출만 하고 있는 코아쥬얼리는 세계 최대 주얼리 마운팅(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등의 보석을 박을 자리를 남겨 놓는 금 장신구의 틀) 제조업체다. 해외 유명 주얼리 회사들은 이 마운팅을 수입해 보석을 세팅한 뒤 비싼 가격에 판매한다. 지난해 수출액은 2700만 달러(약 285억 원)로 우리나라 주얼리 제품 수출액(2억3600만 달러)의 11.4%를 차지했다.
백 대표는 1987년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반포동 귀금속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주얼리 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고도성장을 바탕으로 귀금속 사업이 호황을 누리는 것을 본 그는 그해 전 재산인 600만 원을 들여 코아공방을 차렸다. 6평 크기의 가게에 직원은 2명에 불과했지만 다른 가게와 달리 디자인 개발에 집중했다. 일본 주얼리를 연구해 국내에 없던 3색(노랑 분홍 흰색) 귀걸이, 반지, 팔찌를 내놓아 ‘대박’을 쳤다.
백 대표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질 때 자원해 한 시중은행에서 금의 순도 등을 감정하는 일을 했다. 그것이 계기가 돼 1998년 4월 청와대에서 열린 금 모으기 유공자 오찬 행사에 참석했다. “수출만이 살 길이다”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을 듣고 잘나가던 내수를 접었다.
그해 7월 한국무역협회의 도움을 받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주얼리 쇼에 처음 참가했다. 한국관 한쪽에 마련한 부스를 찾은 한 유대인이 목걸이 3개를 주문했다. 귀국한 후 정성껏 만들어 보냈더니 그가 미국으로 와 달라고 했다. 뉴욕에서 도매상을 하던 그는 고객들의 반응이 좋다며 300개를 주문했다. 1999년 회사 이름을 코아쥬얼리로 바꾸고 본격적인 수출에 나서 2000년 100만 달러, 2004년 1000만 달러, 2010년 200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코아쥬얼리의 경쟁력은 다른 업체가 모방하기 어려운 디자인과 세공 기술에 있다. 백 대표는 세계 보석상들을 만나고 주얼리 쇼에 참가하느라 1년 중 절반가량을 해외에서 보낸다. 백 대표와 미국 뉴욕에 있는 디자이너 2명이 잘 팔리는 제품과 새 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서울 성동구 본사로 전달하면 본사 디자인연구실은 유행을 선도할 새 디자인을, 손기술이 뛰어난 장인들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마운팅을 만든다. 귀금속 업체의 새 디자인 성공률은 10% 수준이지만 이 회사는 50%를 넘는다. 고가의 귀걸이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원 터치 방식 잠금장치, 일명 코아록을 개발해 한국과 미국에서 특허도 받았다.
코아쥬얼리는 국내 인건비가 치솟고 세계 경쟁이 치열해지자 2003년 일감을 중국과 베트남으로 돌렸다.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총생산량의 절반이 넘는 미국 수출 물량을 국내로 옮겨 협력업체 6곳에 맡겼다. 인건비는 오르지만 FTA로 인한 관세 인하 혜택이 더 클 것으로 판단했다.
백 대표는 “다이아몬드 수입 때 관세와 부가세로 수입액의 16%를 낸 뒤 수출하면 환급해 주는데 중소기업에는 수십억 원이 잠겨 있는 게 큰 부담”이라며 “경쟁국인 홍콩처럼 무관세로 완제품을 수출하면 부가가치를 5배, 10배 더 얻을 수 있어 국내 일자리도 많이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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