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9시에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주로 늦잠을 자거나 휴일 나들이를 떠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전국 10% 안팎의 시청자들은 이 시간대 채널을 고정하며 드라마를 시청한다. 7년 된 장수드라마 KBS1 ‘산너머 남촌에는’ 얘기다.
얼마 전 독일로 떠난 친구는 이 드라마의 팬이었다. 친구가 말하는 이 드라마의 매력은 순박함. 동네 주민들의 에피소드에 소소한 재미가 있어서 주말 아침이면 드라마를 보느라 약속 시간에 늦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1990년대 하이틴 스타인 김찬우와 우희진이 농촌 엘리트 부부인 철수와 영희로 나오는 모습도 재밌다”고 귀띔했다.
현대판 ‘전원일기’라고 할 수 있는 이 드라마는 매회 한두 개의 에피소드가 중심이 돼 이야기를 풀어간다. 신춘문예 발표가 나는 연초에는 문학도였던 귀농인의 이야기가, 특정 농산물의 수확시기에는 수확을 둘러싼 마을 주민끼리의 갈등이, 농한기에는 마을 남성들의 노름 문제가, 연말에는 동창회에 나갔다가 과거 짝사랑녀의 소식을 알게 된 농촌 총각의 이야기가 나온다. 외국인 며느리 적응기, 농촌학생들의 교육문제, 청년회장 선출 등 달라진 농촌모습도 소재로 다뤄진다.
저마다 갈등이 있긴 하지만 이로 인해 관계가 극단적으로 치닫진 않는다. 즉 ‘막장’이 없기에 맘 졸일 필요가 없다. 결말은 언제나 순리대로 권선징악으로 끝난다. 1970, 80년대 드라마처럼 마지막 장면이 마을사람끼리 웃는 모습으로 끝날 때도 더러 있다.
물론 지금의 농촌이 꼭 드라마 같진 않을 것이다.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사과 밭 씌우는 시즌이 아닌데 전원 풍경을 위해 일부러 사과 밭에서 일하는 장면을 만들었다” “감자 모종 심는 법이 틀렸다”는 등 ‘깨알 같은’ 지적이 많다. 농촌의 현실과 도시 시청자가 기대하는 ‘농촌 판타지’ 사이에서 균형감을 잡기 위한 제작진의 고민도 느껴진다.
그러나 인공조미료 잔뜩 친 드라마들 사이에서 이런 심심함은 꽤 신선하다. 어쩌면 우리가 촌스러움을 꽤 그리워하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친구의 일요일 아침을 상상했다. 아마도 내 친구를 비롯한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은 가족과 함께 아침 밥상에 둘러앉아 젓가락을 딸각거리며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을까. 드라마 내용 못지않게 드라마 보는 풍경도 훈훈할 것 같다. 집을 떠난 친구가 홀로 맞을 일요일 아침도 그 ‘촌스러운’ 기억들로 인해 따뜻하길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