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숨진 A 양)의 몸 어디 하나 성한 구석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겪었을 엄청난 고통과 공포를 말입니다.”
경북 칠곡 의붓딸 학대사망사건의 생모 이모 씨(36)가 5일 재판부에 “계모 임모 씨(35)에게 반드시 살인죄를 물어야 한다”고 호소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2월에 낸 A4용지 8장 분량의 1차 진정서와 다른 것으로 검찰이 2일 대구지법 제11형사부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임 씨에게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20년을 구형한 이후 작성해 제출한 것이다.
‘저는 피해자 ○○○, △△△의 생모입니다’라고 시작하는 A4용지 4장 분량의 진정서에는 임 씨에게 속아 돈을 보내준 과정과 그의 반성문을 믿을 수 없다는 내용, 두 자매가 고통을 견디며 살아왔을 거란 사실이 끔찍하다는 생모의 속마음이 담겨 있다.
이 씨는 먼저 “임 씨가 아이들을 잘 보살펴 줄 것이라 믿은 내가 큰 죄를 저질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양의 탈을 쓴 악마’를 보았다”고 적었다. 이어 ‘죄가 있다면 달게 받겠다는 사람이 반성문을 왜 쓰느냐’며 진정성을 의심했다. 그는 “○○이의 부검 결과가 외부 충격에 의한 복막염이고 아이를 때려놓고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사람이 임 씨인데 왜 살인죄가 되지 않느냐”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2일 공판에서 임 씨 측 변호인이 평소 생활고에 시달려 돈이 없었고 이 때문에 A 양을 병원에 바로 데려가지 못했다고 변론한 데 대해선 “특정 종교 모임에 참가하느라 5만 원의 버스비를 내고, 수십만 원씩 들여 제사를 지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반박했다.
2일 재판 전에 A 양의 언니 B 양(12)이 쓴 글을 고모가 보여준 사실도 언급했다. 이 씨는 “‘(계모 임 씨를) 빛도 볼 수 없게 해 달라’라고 적은 쪽지를 봤다”고 했다. 그는 “재판이 진행되면서 놀라운 사실들을 너무 많이 알게 됐다. 사람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임 씨는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했다. 그냥 전해만 들어도 이렇게 끔찍하고 공포스러운데 직접 몸으로 겪은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웠을까”라며 한탄했다.
이 씨는 세상에 남은 B 양이 힘들어하고 있는 근황도 소개했다. 그는 “○○이의 언니가 임 씨의 폭행을 말리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만약 아이가 임 씨를 말렸다면 혹시 ○○이처럼 되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 씨는 “앞으로 ○○이의 언니가 힘내서 살아가도록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 감형은 있을 수 없다. 살인죄를 물어 합당한 벌을 받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www.donga.com에 전문 게재)
현재 B 양은 대구의 한 아동보육시설에서 지내다 9일 오전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호소해 고모와 함께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고 있다. 보육시설 관계자는 “아침에 갑자기 학교로 찾아온 한 기자 때문에 B 양이 많이 놀란 것 같다”며 “선고일(11일)까지는 고모와 함께 지내고 이후 상황에 따라 B 양의 거취를 결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2월부터 이곳 보육시설에서 지낸 B 양은 인근 초등학교를 다니며 평범하게 지냈다. B 양이 겪었던 끔찍한 기억은 보육시설의 일부 관리자만 알고 있다. 시설 관계자는 “B 양이 시설에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원래의 성격을 조금씩 회복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B 양은 학교를 마친 뒤 종종 또래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거나 학원에서 미술, 피아노를 배우기도 했다. 특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매주 심리치료도 꾸준히 받았다. 3, 4세 동생들도 잘 돌보고 있다는 게 시설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어두운 기억을 쉽게 떨쳐내지는 못하고 있다. 친한 선생님 앞에서도 이 사건과 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고 한다. 친구들과 잘 지내다가도 싸움을 하거나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쉽게 흥분하고 격한 감정을 표출했다. 가장 믿고 의지하는 고모에게 전화해 속상한 일을 이야기하다가 큰 소리를 내며 우는 일도 잦았다. B 양의 고모는 거의 매주 시설에 들르다시피 하고 있다.
시설 관계자는 “아직 동생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이 남아 있는 듯하다”며 “애써 아닌 척 노력하고 있지만 마음의 문을 여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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