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順命]권노갑 회고록<14>정동영의 사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2일 03시 00분


최고위원 사퇴 이틀뒤 울린 초인종… “사과하러 왔습니다”

2000년 12월 8일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회의를 마친 뒤 정동영 최고위원에게 악수를 건네는 권노갑 최고위원. 전날 청와대 최고위원회의에서 ‘권노갑 2선 후퇴’를 주장했던 탓인지 정 최고위원의 표정이 어색하다. 동아일보DB
2000년 12월 8일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회의를 마친 뒤 정동영 최고위원에게 악수를 건네는 권노갑 최고위원. 전날 청와대 최고위원회의에서 ‘권노갑 2선 후퇴’를 주장했던 탓인지 정 최고위원의 표정이 어색하다. 동아일보DB
○사퇴 성명서

내가 문제의 당사자로 지목된 배경은 두 가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는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그 무렵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에 연루돼 세간의 비난이 거셌는데, 대통령이 그를 교체하지 않는 것은 내가 그의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오해였다.

그러나 박지원 장관은 결국 2000년 9월 20일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그렇게 되자 당내의 화살은 김옥두 사무총장에게로 쏠렸다.

먼저 장성민 의원이 김옥두 총장을 ‘제왕적 사무총장’이라 비판하고 소장파 의원들이 이에 동조해 당 지도부에 사무총장을 바꾸라는 압력을 가했는데, 내가 “김옥두 총장이 잘못한 게 뭐가 있느냐”며 이를 막았다.

그 후 김대중 대통령이 김옥두 사무총장을 재임명하자 소장파들은 내가 있는 한 자기들 뜻대로 되지 않으니 나를 먼저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여하튼 정동영 의원의 발언을 계기로 차기 대권과 당권을 둘러싼 미묘한 당내 움직임이 신주류니 구주류니 하는 권력갈등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태가 증폭되기 시작했다. 내가 2선으로 물러나는 것이 당 화합과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당 총재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셨다.

그래서 그해 12월 17일 내 측근으로 일하던 김희완 전 서울시 부시장을 통해 사퇴 성명서를 발표하도록 했다.

“저는 오늘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날 목포지구당위원장직 사퇴, 국회의원 불출마, 최고위원 불출마 때와 같은 심경이고, 따라서 숱한 감회가 따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할 말은 많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40년간 그래왔듯이 나라와 당과 대통령을 위해서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이 저의 숙명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순명(順命)’ 앞으로 저는 제게 주어진 이 같은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한밤중의 초인종

그러고 난지 하루 이틀 지나서였다.

그날 밤 우리 집에는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이석형 변호사가 찾아와서 커피를 마시며 환담하고 있는데, 오후 10시쯤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집사람이 인터폰으로 물었더니 손님은 다름 아닌 정동영 의원이었다.

“웬일이세요?”

“사과하러 왔습니다.”

집사람은 현관문을 따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1시간쯤 있다가 두 사람은 “갔겠지요?”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니 다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정동영입니다.”

집사람은 이번에도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사과하러 왔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인터폰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언론에 공개적으로 나를 매도해놓고 뒤로 와서 개인적으로 사과하는 것은 안 된다. 진정으로 사과할 생각이라면 공개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해야 한다.”

그러나 정동영 의원은 끝내 사과문을 발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 해 5월 24일경 ‘바른정치 실천모임’의 구성원인 천정배, 신기남 의원 등이 또 비선라인의 청산문제를 들고 나왔다. 비선라인이란 바로 나를 지칭한 것으로, 이번에는 아주 당에서 떠나라는 것이었다.

뒤에 민주당을 쪼개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 그 선두에 섰던 속칭 ‘천·신·정’은 모두 내가 뒤에서 지원해주던 사람들이었다.

누구를 제물로 삼는 것은 쉬운 일이다. 어떤 미인도 도마 위에 올리면 5분 안에 작살낼 수 있다. 나를 청산해야 한다고 외치던 이들도 정작 도마 위에 올리면 결코 5분 이상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누가 누구를 몰아내는 식으로 조직을 운영하면 그 조직은 결국 분열하고 쇠망의 길로 들어서는데, 그러한 뺄셈정치의 결과는 그들이 앞장서서 만들었던 열린우리당의 2007년도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던가?

○용서와 화해

세월이 지났다.

내가 형집행정지로 삼성제일병원에 입원 중이던 2006년 1월 1일 열린우리당 의장에 당선된 정동영 씨가 다시 나를 찾아와 사과했다. 그래서 나는 정동영 의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식의 차이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나는 자네가 한 일을 충정으로 보고 싶다. 그러나 정치인은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전혀 사실이 아닌 유언비어를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한 것은 온당치 않다.”

정동영 의장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시인했다.

그리고 2007년 2월 중순께 다시 찾아와 내가 3·1절 특사로 풀려나게 된다는 것을 귀띔해주면서 동시에 지난날의 일을 다시 사과한다는 뜻을 밝혔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용서와 화해의 정신을 배웠다. 그 가르침에 따라 이렇게 말했다. “모든 걸 용서한다. 자네를 정치에 데뷔시킬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사실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정동영 전 의장이 큰 정치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런데 젊은 정치인들이라고 해서 다 나를 공격한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당정쇄신의 표적이 되어 있을 때 나를 이해해준 젊은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중의 한 사람이 바로 정동영 의원과 같은 ‘바른정치 실천모임’의 구성원이었던 김민석 의원이다.  

▼ “학맥 혁파, 그렇게 일렀거늘…” ▼
정치 9단 DJ의 2007년 대선 진단


2010년 출간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2007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 투표를 했다. 민주당 후보가 패했다. 표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참담했다. 내가 정치를 하는 동안 민주당 후보가 이처럼 무참하게 진 것은 처음이었다. 이듬해 총선 전망도 아주 어려워졌다. 잘못하면 일당 지배의 국회가 되고, 오랜 전통인 양당제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더욱 큰일은 묘책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 5년 동안 민주당 지지기반이 무너졌다. 최대 지지기반인 호남사람들과 젊은이들을 실망시킨 건 참으로 아쉬웠다.”

DJ는 정동영 후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민주당 후보’라고만 했다. 2000년 12월 청와대에서 열린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회의를 회고하면서 ‘최고위원 한 명은 내 앞에서 그(권노갑)의 퇴진을 주장했다’라고 서술한 것과 비슷하다. 왜 정동영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을까.

더욱 궁금한 것은 바로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우리 정치에서 사라져야 할 유산이 지연(地緣) 말고도 또 하나 있다. 바로 학연(學緣)이다. 나는 재임기간 중에 고교 및 대학 학맥을 혁파하라고 그렇게 일렀는데도 학연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향이나 인품으로 보아 결코 학연에 매몰될 사람이 아닌데도 정작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을 종종 봤다. 어떤 때는 나도 그런 것 아닌가 살펴보기도 했다. 비교적 학연에서 자유로운 상고 출신이라는 게 다행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민주당 후보의 대선 패배에 대한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다 갑자기 ‘학연 정치’의 폐해를 언급한 이유가 뭘까. 정동영 후보는 전주고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했다. DJ가 서울대나 국사학과를 두고 ‘학연의 폐해’를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건 전주고뿐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정동영 후보 주위에 몰린 인물들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는데, 아마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아닌가 하고 추측해 볼 뿐이다.

여하튼, 권노갑 고문은 2007년 대선 이후 정동영 상임고문을 부를 때 “정 후보”라고 한다. 권 고문은 “대통령 후보는 우리 정치의 큰 자산이다. 마땅히 예우를 갖춰 불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권 고문은 DJ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후보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1970년 9월 DJ가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이후 1987년 평민당을 창당할 때까지 대략 15년 이상을 그렇게 불렀다.

DJ와 권 고문을 오랫동안 지켜본 양영두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은 그 시절 ‘후보님’이라는 호칭을 좋아했다”고 기억했다. 권 고문은 물론 문재인 의원도 “문 후보”라고 부른다. 하지만 문 후보와는 달리 정동영 고문을 “정 후보”라고 부르는 데는 용서와 화해의 다짐이 깔려 있다.

김창혁 전문기자 chang@donga.com
#권노갑#정동영#새천년민주당#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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