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가 수시로 바뀌었지만 조문객은 자리를 지켰다. 19일과 20일 경기 안산시 제일장례식장에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숨진 단원고 교사와 학생들의 장례식이 줄을 이었다. 사고 생존자와 단원고 1, 3학년 재학생, 교사들은 장례식장에서 계속 빈소를 돌았다.
20일 교사 2명과 학생 4명 등 6명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오전 5시 학생 희생자 중 처음으로 장례를 치른 4반 장모 군에 이어 같은 반 안모 군(17), 6반 담임 남윤철 교사(35), 3반 담임 김초원 교사(26·여)의 장례식이 1시간 간격으로 치러졌다.
운구차 한 대가 떠나면 다른 운구차가 장례식장 앞으로 와 차례를 기다렸다. 유족들은 슬픔을 가슴에 안은 채 45인승 운구차에 올랐다. 교사와 학생들은 다시 다른 이들의 빈소로 향했다.
이날 김 교사의 영정 사진은 남동생이 들었다. 남동생은 침통한 표정으로 줄곧 바닥만 보며 걸었고 뒤따르는 부모는 “원아, 초원아”라며 하염없이 이름을 불렀다. 곳곳에서 “잘 가, 초원아” “꼭 편안해야 해”라는 목소리가 흐느끼며 들려왔다. 올해 단원고에 부임해 처음 맡은 담임이었고 학생들과 격의 없이 지낸 김 교사를 학생들은 많이 따랐다. 사고 당일인 16일은 생일이었고 학생들은 선물과 편지를 전해줬다. 김 교사의 아버지는 “똑똑하고 정이 많은 딸이었는데…”라며 몇 번이고 딸의 사진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 교사의 화장식이 있었던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연화장은 전날 9반 담임 최혜정 교사(24·여)의 화장식이 치러진 곳이다. 최 교사의 화장식은 오전 11시 수원연화장 8호 화장로와 분향실에서 유가족과 동문, 자원봉사자 2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최 교사의 어머니는 몇 번이고 “우리 딸 인생 아까워서 어떡해”라고 말했다. 분향실 안 모니터에 ‘화장 중’이란 빨간 글씨가 뜨자 모두가 흐느꼈고 최 교사의 어머니는 부축을 받으며 분향소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최 교사가 있던 빈소에는 곧바로 ‘침몰된 세월호에 있는 수백 명의 학생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라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강민규 교감(52)의 빈소가 차려졌다.
끝까지 아이들을 구조하다 떠난 남 교사의 유해는 안산을 떠나 고향인 충북 청주로 향했다. 청주시 목련공원에서 치러진 화장식에는 부모님과 친지, 천주교 신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남 교사의 부모는 슬픔을 누르고 오히려 화장장을 찾은 조문객들을 위로했다. 남 교사의 아버지는 “아들이 학생들을 살리려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자랑스럽다”고 말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남 교사의 고등학교(청주 신흥고) 선배인 김근형 씨는 “(남 교사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강직한 성격이었다. 자랑스러운 후배가 세상을 떠나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남 교사의 유골은 이날 오후 청주시 내덕동 주교좌성당에서 추모 미사를 한 뒤 청원군 가덕면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20일 학생 4명의 장례식이 더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유족들이 다른 학생과 합동 장례식을 치르기로 해 연기됐다. 이날까지 시신 27구가 안산시내 9개 장례식장으로 이송됐다. 남은 빈소는 점점 없어지는데 실종자는 아직도 200명이 넘는다.
딸의 시신을 확인한 아버지 고모 씨(50)는 시신이 안치된 목포중앙병원에서 “딸을 잃은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하지만 시신이라도 이렇게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비록 하늘나라로 간 딸이지만 얼굴이라도 볼 수 있어 행복하다”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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