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정치권도 자중]
먼저 얘기 꺼냈다 여론 뭇매 우려… 여야 모두 필요성 있지만 눈치보기
건국 이래 선거 연기된 적 없어… 선관위 “여야 합의 땐 충분히 가능”
세월호 침몰 사고로 국가적 조문 정국이 형성되면서 정치권 일각에서 6·4지방선거 연기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최영일 충주시장, 김병수 전주시장 예비후보 등은 21일 “세월호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 실종자 수색을 어느 정도 마무리할 때까지는 소란한 지방선거 일정을 반드시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여야 내부에서도 조심스럽지만 “연기론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오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야 지도부는 “지방선거 연기는 검토한 적도 없고, 검토할 수도 없다”고 선을 긋기 바쁘다. 연기론이 던질 민감한 정치적 파장 때문이다.
○ 여야, 모두 손사래를 치지만…
지방선거가 40여 일밖에 남지 않았고, 최초 희생자의 49재는 선거일 하루 전인 6월 3일이다. 조문 정국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축제 분위기로 흘러갈 선거 일정을 진행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여야 내부의 속사정도 복잡해 보인다.
침몰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무능에 대한 비판이 계속될수록 여당에 악재(惡材)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여당에 득이 될 일이 없다는 얘기가 새누리당 내에서 흘러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뒤늦게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철회하고 급박하게 공천 준비에 나섰지만 이번 참사로 후보자 공천 일정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6월 4일에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루기에는 준비가 부족한 상태라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방선거 연기를 먼저 꺼내는 쪽이 죽는다”라고 정리했다. 먼저 말을 꺼내는 순간 국민적 비극을 정치적 유·불리로만 판단했다는 여론의 십자포화를 받으면서 공적(公敵)으로 낙인찍히는 민감한 이슈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야 지도부는 모두 손사래를 친다.
새누리당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은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구조에 전념할 때다. 지방선거 연기 문제는 검토하지도 않았고,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일축했다. 새정치연합 최재천 전략홍보본부장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혀 논의된 바 없다”며 “왜 이 시점에서 그런 허무맹랑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지 답답하다”고 잘라 말했다.
○ 건국 이래 선거 연기는 없었지만…
건국 이래 대한민국의 공식 선거가 연기된 적은 없다. 6·25전쟁 중에도 대통령 선거, 지방의원 선거,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실시했다.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강원 고성, 강릉, 동해, 삼척에 큰 산불이 나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당시 삼척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총선 투표를 연기할 수 있을지를 중앙선관위에 문의했다. 하지만 실제 이 지역에서 총선 일정은 연기되지 않았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3개월 전에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했지만 지방선거는 예정대로 실시됐다.
선관위는 지방선거 연기는 정치권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선관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선거 연기 움직임은 전혀 없지만 여야 합의로 공직선거법에 ‘이번 선거에 한하여 시기를 변경한다’는 내용의 부칙을 추가하면 시기 조정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과연 이번 사건이 지방선거를 연기할 만한 절박한 사유에 해당되는지 판단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야는 서로 연기론의 ‘연’자도 먼저 꺼내기 싫어하는 상황이다. 결국 지방선거 연기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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