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해양안전 아이디어 봇물]
인터넷에 비상탈출 묘안 쏟아져… “사방 밀폐 대피실 만들자” 의견도
전문가들 “특수상황 전제는 곤란… 장비 갖추는 것보다 활용이 중요”
세월호 선체가 침몰 전 좌현으로 90도 가까이 기울자 일부 승객들은 소방호스를 로프 삼아 붙잡고 절벽처럼 변한 복도를 기어올랐다. 이 장면을 방송으로 지켜본 인테리어 업자 정우식 씨(30)와 11살 자녀를 둔 김동권 씨(43) 는 ‘내가 만약 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배를 빠져나와야 할까’ 생각한 끝에 선실과 복도 천장에 사다리를 설치한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평소엔 장식품처럼 매달려 있다가 배가 기울면 승객을 비상구로 이어주는 안전장치가 되지 않겠냐는 것.
수많은 시민들이 인터넷 국민신문고와 커뮤니티에 이 같은 비상 탈출 장치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만에 하나 유사한 사고가 재발하면 1명이라도 더 많은 승객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많았다. 해양 안전 전문가와 선박 업계 및 정부 관계자의 조언을 토대로 실현 가능성을 따져봤다.
○ 사다리-패닉룸, 기술적으론 가능
가장 많이 등장한 의견인 ‘천장 사다리’는 설치 자체가 어렵지 않고 비상 시 어느 정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평가됐다. 국내 여객선에는 해외와 달리 단체 여행객을 수용하기 위한 대형 선실이 많은데, 배가 기울면 승객이 출입구까지 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많은 승객들이 대형 플로어룸에 머물다가 탈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다만 사다리가 충격에 의해 떨어지면 오히려 안전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허용범 한국도선사협회 기술고문은 “바닥과 천장에 촘촘히 홈을 파거나 그물을 펼쳐서 사다리처럼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배가 침몰할 때까지 배 바깥으로 탈출하지 못하더라도 얼마간 구조대를 안전하게 기다릴 수 있도록 사방이 밀폐된 ‘패닉룸(안전실)’을 만들자는 의견도 많았다. B여객선사에 따르면 2002년 건조한 ‘S호’ 등 일부 국내 여객선의 엔진실은 실제로 밀폐형으로 설계돼 있다. B선사 관계자는 “승객을 인솔하다가 자신은 미처 탈출하지 못한 선원들이 ‘최후의 대피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아라비아 해 인근을 항해하는 해외 선박들은 해적이 접근할 때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구조를 기다릴 수 있는 ‘시타델(긴급 피난실)’을 마련해두고 있는데, 일부는 산소 공급 장치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 “비용 탓” 실제 적용은 어려워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라도 실제 선박 안전 규정에 적용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많았다. 침몰 사고 시 기본 원칙은 선박을 탈출해 구명정 등으로 대피하는 것인데, ‘선체가 크게 기울거나 선내에 물이 들어찰 때까지 승객이 선실에 머무른다’는 특수한 상황을 전제로 안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뜻이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안전 규정을 토대로 만들어진 국내 선박안전법에도 배가 크게 기울었을 때를 대비해 특정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성우제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침몰에 대비해 패닉룸을 만들자는 의견은 ‘화재에 대비해 아파트마다 안전실을 만들자’는 것과 같다”고 했다.
비용 문제도 있다. 특히 선내에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패닉룸을 제작하고 산소공급 장치까지 설치하려면 웬만한 중고 선박을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해외 유명 크루즈선 중에도 대형 패닉룸을 갖춘 선박은 드물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