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지진 피해자 집까지 찾아가 트라우마 진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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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트라우마를 막아라]
해외의 재난후 트라우마 치료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플래그 이즈 업’ 목장에는 참전용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학대당했던 말(馬)을 활용해 참전용사를 위한 승마 치료를 진행하는 이곳에선 불안감을 느끼는 말과 참전용사가 서로를 의지하고 믿는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프가니스탄전 참전용사인 얼리셔 왓킨스 씨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그는 “처음엔 다가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점차 말이 마음을 받아줄 때 내 상처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현재 미국 참전군인 치료센터 30곳 이상에서 이런 승마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은 제1, 2차 세계대전과 대형 재난재해를 겪는 과정에서 군인과 그 가족들을 위한 트라우마 치료와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1989년에는 미국 보훈처 직속으로 ‘국립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센터’를 설립하고 트라우마에 대한 ‘사전 예방→현장 관리→사후 관리’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9·11테러 이후에는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중심이 돼 재난 대응과 심리치료를 총괄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福島) 이와테(巖手) 미야기(宮城) 등 3개 지역에서 트라우마를 겪는 주민이 급증했다. 이들은 우울증, 만성 불안, 갑갑증, 알코올의존증에 시달렸다.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도 많았다. 일본 정부는 피해 주민들을 치유하기 위해 후쿠시마 6곳, 이와테 5곳, 미야기 3곳 등 14곳의 심리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18억 엔(약 182억 원)의 연간 운영비를 지원하면 각 자치단체가 직능단체인 정신보건사복지협회와 대학에 운영을 위탁한다. 센터에는 간호사와 임상심리사, 정신보건복지사가 상주하면서 피해자들의 자택이나 임시주택을 방문해 상담 활동을 펼친다. 증세가 심각하면 전문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크고 작은 자연재난과 독립을 주장하는 소수민족의 테러까지 발생하는 중국에서도 사망자 유족이나 부상자들의 정신적 치료가 큰 과제다. 2008년 5월 12일 쓰촨(四川) 대지진으로 8만여 명이 사망했을 때 중국 위생부는 심리학 전문가 30명, 심리치료사 200여 명 등으로 구성된 ‘심리위기치료 의료단’을 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트라우마를 하나의 질병으로 보는 인식이 부족한 데다 국가보훈처, 소방방재청, 지역사회정신보건센터 등에서 산발적으로 치료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심리적 외상을 진단·치료하고 종합적으로 연구 관리하는 ‘국립트라우마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왔다.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에 낮은 보험수가가 적용되는 것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심리치료를 기피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는 과거의 어떤 대형 재난보다 더 크고 길게 국민에게 심리적 상처를 남길 가능성이 크다. 거대한 배의 침몰 과정과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어린 학생들에 대한 수색작업을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서해훼리호 침몰 등의 대형 참사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적 외상을 조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 어느 때보다 충격이 컸던 만큼 정부가 직접 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박종익 강원대 교수(신경정신학)는 “이번에는 국가적 재난에 대응하고 사후 대처를 할 수 있는 국가위기대응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도쿄=배극인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일본 대지진#트라우마#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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