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그날 선원들은]
통신 맡은 3등항해사는… 좌현구석 밀려나있다 탈출
구명벌 펼 3등조타수는… 타만 붙잡고는 어쩔줄 몰라
진도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선장 이준석 씨(69·구속)와 1·2·3등 항해사, 조타수 등 운항을 책임지는 갑판부 선원 8명은 브리지(선교)에 모여 있다가 승객보다 먼저 탈출해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이들은 배가 침몰할 당시 구조 요청만 반복하며 정작 승객을 안전하게 탈출하도록 하는 선원의 의무를 저버렸다. 이들은 1월 선장의 진두지휘 아래 갑판부와 기관부 선원들이 각자 주어진 위치에 서서 구명벌을 투하하는 등 퇴선명령에 대처하는 훈련을 했지만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무용지물이었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세월호 비상 부서 배치표에 따르면 3등 항해사는 배가 위험에 처하면 선장을 보좌하며 선내·외 비상통신을 맡아야 한다. 해경이나 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에 구조 요청을 하거나 선장의 안내방송 명령을 안내원에게 전달해 방송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게 돼 있다. 배의 모든 지시는 선장이 결정하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선장의 곁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세월호 3등 항해사 박한결 씨(26·여·구속)는 16일 오전 8시 48분 급격한 우현 선회의 영향으로 배가 왼쪽으로 기울자 기계를 붙들고 버티기만 했을 뿐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배가 기우는 각도가 가팔라지자 힘이 달려 버티지 못하고 좌현 구석으로 밀려나기까지 했다. 그는 탈출하기 직전까지 그 상태로 있다가 선장 이 씨가 좌현 미닫이문을 뚫고 밖으로 밀려나가자 그 문을 통해 바로 탈출했다.
박 씨가 해야 할 비상통신 임무는 1등 항해사 강원식 씨(42·체포)와 2등 항해사 김영호 씨(47·체포)가 나눠 맡았다. 김 씨는 브리지 정면 창문 옆에 있는 초단파무선통신(VHF) 무전기를 조타수 박모 씨(60)로부터 건네받아 제주 VTS와 비상통신을 시작했다. 이후 김 씨와 강 씨가 번갈아가며 오전 8시 55분부터 9시 38분까지 무전 교신을 이어갔다. 하지만 강 씨와 김 씨는 무전기로 안내원들에게 선장의 명령을 전해 방송하도록 지시하는 역할을 다 하지 않은 채 선장의 퇴선명령을 안내원에게 전하지 않고 탈출했다.
1등 항해사 신정훈 씨(34·체포)는 퇴선 상황이 되면 선원들을 이끌고 현장 지휘를 맡으면서 구명정이 띄워진 바다로 승객이 탈출할 수 있도록 우현 쪽 공기미끄럼틀을 펼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사고 당시 세월호 항해가 처음이었던 신 씨는 선장과 함께 해도대(해로가 그려진 도면이 올려진 책상)에 매달려 버티기에 급급했다. 같은 1등 항해사인 강 씨는 선장이 구명정을 띄우라는 명령을 내리자 우현 문을 통해 갑판으로 나가 구명정을 펴려고 했지만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
배가 급하게 오른쪽으로 선회할 당시 타를 잡고 있던 3타수 조준기 씨(56)는 선임인 1타수 박모 씨(60)에게 조종을 넘기고 우현에 설치된 구명벌을 펼쳐야 했지만 우왕좌왕하며 타만 붙들고 있었다. 1타수 박 씨는 브리지에 들어오자마자 타를 잡으려 했으나 배가 왼쪽으로 크게 기울어 접근하는 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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