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부도 이후 다 망한 줄만 알았는데, 1980년대 ‘세모왕국’이 재연되고 있었다.”
침몰한 세월호를 운항한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와 계열사들의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에선 22일 ‘세모왕국’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유 전 회장은 뒤로 물러난 것처럼 보이지만 부인과 장남, 차남이 복잡한 지분관계를 형성하며 문어발식으로 국내 계열사 14곳 이상을 직접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밖에도 숨겨진 계열사들이 있다고 의심한다. 유 전 회장 일가의 개인 재산은 2400억 원, 계열사 자산가치는 5600억 원으로 추산되며 재벌닷컴에 따르면 계열사들이 해외에 나가 설립한 해외법인은 모두 13개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부터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고 보고 있다. 도산한 뒤에도 유 전 회장이 ㈜세모의 조선사업을 애초에 내놓을 생각 없이 법정관리 중인 법원을 속여 채무만 탕감받고 위장 회사를 통해 다시 사들였다는 의혹이 일었다.
㈜천해지의 금융감독원 감사보고서와 한국기업평가 신용조사 보고서 등에 따르면 2005년 세모를 법정관리하고 있던 인천지법은 회생 가능성이 높은 사업인 조선사업부를 천해지에 매각한다. 당시 세모 조선사업부를 사들였던 컨소시엄은 ㈜새천년 ㈜영광 ㈜대명산업 ㈜도남 등 대부분 옛 세모의 하청업체들로 구성됐다. 이 과정에서 세모는 법원으로부터 600억 원 정도의 채무면제 혜택까지 받았다.
그런데 매입 이듬해인 2006년부터 3년 동안 수상한 지분 변동이 일어난다. 영광 대명산업 도남이 보유한 지분은 ㈜빛난별이라는 회사로 넘어가고, 2008년엔 빛난별의 지분도 유 전 회장의 부인 김혜경, 장남 유대균, 차남 유혁기 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다판다와 ㈜문진미디어로 다시 이동했다. 70.13%나 되던 새천년의 지분은 2008년 유 전 회장 일가가 최대주주로 있으며 각 계열사의 지주회사 격인 ㈜아이원아이홀딩스로 양도된다. 결국 세모 조선사업부 매각 3년 만에 경영권이 유 전 회장 손에 들어간 것이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위장 계열사를 통한 탈세, 횡령과 배임 등 각종 범죄가 발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아이원아이홀딩스가 여러 계열사로부터 경영컨설팅 비용을 받아 매출실적을 올렸고, 이 실적을 바탕으로 유 전 회장 일가가 주주 배당까지 받아간 것을 확인했다. 아이원아이홀딩스의 규모와 능력으로 볼 때 실제 컨설팅은 이뤄지지 않은 채 계열사 돈만 받아 챙긴 게 아닌지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해운회사인 천해지가 지난해 느닷없이 사진예술작품 판매 회사 ㈜헤마토센트릭라이프연구소 문화사업부를 합병하면서 160억 원의 자산을 승계한 반면 부채 95억 원을 떠안은 것도 수사 대상이다. 이때 승계한 자산 중 126억 원이 액수를 명확히 평가하기 어려운 유 전 회장 등의 사진작품으로 조사됐는데, 검찰은 사진 상품가치를 부풀려 유 전 회장에게 이익을 몰아준 의혹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런 식의 ‘곶감 빼먹기’식 경영 때문에 선박의 안전 설비와 정비, 직원 안전교육에 들어가야 할 돈이 유 전 회장 일가 배불리기에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청해진해운은 자산규모가 331억 원이지만 부채가 266억 원이나 되고 상당수 계열사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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