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기고]자비심에서 오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4일 03시 00분


현진 스님(청주 마야사 주지)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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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며칠 동안 일품을 사서 앞뜰 정원을 자연석으로 바꾸는 일을 했다. 이번 공사에 쓰고 남은 돌을 그냥 두기가 아까워서 그저께 산신각 뒤로 야트막하게 축대를 쌓았다.

덕분에 어지럽던 뒤쪽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는데, 이 일은 석공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어깨너머로 배웠던 내 솜씨를 발휘했다.

들쑥날쑥 울퉁불퉁한 돌을 앞줄 아귀를 맞추어서 놓으니까 반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못생긴 돌이라서 석공에게 천대받던 돌이 비로소 제자리에 쓰이게 된 것이다.

현진 스님(청주 마야사 주지)
현진 스님(청주 마야사 주지)
이런 일을 하면서 담장을 쌓는 데는 크고 작은 돌과 모나고 둥근 돌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배웠다. 모두가 그 쓰임새가 따로 있는 것이다. 여기에 조화와 균형의 비밀이 있다.

예전에 원로 스님들의 모임이었던 여석회(餘石會)가 있었다. 여석회에는 성철, 구산, 자운, 관응, 석암, 탄허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정확한 명칭은 축성여석회(築城餘石會)다. 축성여석, 말 그대로 성을 쌓고 남은 돌이라면, 아무도 거들떠보거나 관심 가지지 않는 돌이다. 성을 쌓는 돌에도 끼지 못했으므로 이른바 쓸모없는 돌이기 때문에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이 사회의 외톨이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남은 돌처럼 살자는 의미에서 이 모임을 결성했다는 후문이다. 성공이나 경쟁의 중심에서 벗어나서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겠다는 서원이라서 그 의미가 예사롭지는 않다.

돌도 그렇듯이 각자의 개성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질서가 된다. 서로의 특징이 제 역할을 해주어야 어긋나지 않는 미(美)의 율동이 살아난다. 봄날에 피어나는 꽃들이 서로 닮으려 하지 않으므로 울긋불긋 꽃 천지를 이루는 이치와 같다.

이즈음에서 우리들이 경계해야 될 것은 획일적인 조화다. 기계에서 찍어내는 물건은 획일적인 것이지만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차별적 조화’다.

이 땅에 마음껏 물감을 풀어내는 수목들처럼 서로의 개성이 어우러져야 차별이 있지만 아름다운 조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획일적인 것은 재미없다. 이런 차별적 조화를 모르고 획일적으로 닮아가려는 세태를 일러 장자는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는 훈수를 두었다.

부처님오신날에 등불을 켜는 풍경도 획일적이지 않아야 어둠을 밝히는 본래의 뜻이 더 선명해질 수 있다. 큰 등과 작은 등이 어울리고 분홍등, 노란등이 내걸리고, 연꽃등, 팔모등, 수박등이 환하게 불을 밝혀야 등불의 조화가 찬란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연등이 비닐 제품이 아니라 손으로 만들어진 지등(紙燈)이라면 소박한 아름다움도 배어 나올 수 있겠다.

근래에는 전기가 등불을 대신하고 있는 추세지만 촛불로 등을 밝히는 야경을 나는 더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절에서는 한지로 등을 만들고 촛불로 어둠을 밝히는 것을 매년 고집하고 있다.

또한 등불을 올리는 정성에도 장소와 크기를 따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큰절과 작은 절의 불심이 어찌 다를까? 비단등과 종이등에 담긴 봉축의 마음도 근원적으로는 똑같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존재는 자비심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자비심에는 빈부귀천도 없고 종교와 이념도 초월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부처님이 어디에서 오셨는가? 교리적으로는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사바세계로 하강하셨다 하였지만 도솔(兜率)의 본뜻은 만족할 줄 아는, 지족(知足)이다.

그러므로 시샘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으면서 만족할 줄 아는 삶이 곧 부처님 세상이라는 가르침이다. 지족이 부처님의 세계라면 자비는 부처님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이 지족과 자비는 동의어다. 불탄일을 수없이 맞이하여도 이것을 잊으면 교양 없는 비불자다.

거듭 말하지만 부처님은 그 어디에서 오신 것이 아니라 자비심에서 탄생하셨다. 이런 입장이라면 스스로에게 자비심의 유무를 먼저 물을 수 있어야 참다운 봉축의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들의 자비지수(慈悲之數)는 얼마쯤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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