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딸 보낸 아버지 “하늘나라에서 한 반 꾸리지 않겠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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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안산은 지금]
계속되는 슬픔… 힘겨운 나날

“우리 승묵이를 지켜주세요”… 가게 문 가득 채운 소망 편지 23일 오후 경기 안산시 상록구
 삼일마트 앞에 시민들이 남긴 실종자 무사생환 메시지가 가득 적혀 있다. 삼일마트는 실종된 단원고 2학년 강승묵 군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군의 어머니는 사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가게 문을 닫고 ‘단원고, 우리 승묵이를 지켜주세요’라는 흰 
종이를 붙여 놓은 채 진도로 떠났다. 사연을 들은 시민들은 강 군을 포함한 단원고 학생들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작은 
메모지를 셔터문에 붙이기 시작했고 며칠 사이에 문 앞을 뒤덮을 만큼 늘어났다. 아래는 18일 오후 당시 가게 모습. 안산=원대연 기자·뉴스1 yeon72@donga.com
“우리 승묵이를 지켜주세요”… 가게 문 가득 채운 소망 편지 23일 오후 경기 안산시 상록구 삼일마트 앞에 시민들이 남긴 실종자 무사생환 메시지가 가득 적혀 있다. 삼일마트는 실종된 단원고 2학년 강승묵 군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군의 어머니는 사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가게 문을 닫고 ‘단원고, 우리 승묵이를 지켜주세요’라는 흰 종이를 붙여 놓은 채 진도로 떠났다. 사연을 들은 시민들은 강 군을 포함한 단원고 학생들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작은 메모지를 셔터문에 붙이기 시작했고 며칠 사이에 문 앞을 뒤덮을 만큼 늘어났다. 아래는 18일 오후 당시 가게 모습. 안산=원대연 기자·뉴스1 yeon72@donga.com
세월호가 침몰한 지 8일째인 23일. 일부는 생존했고 일부는 시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도 자식의 생사를 모른 채 시신조차 찾지 못한 가족들은 고통 속에서 기나긴 기다림을 계속하고 있다.

○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 남겨진 가족들

경기 안산 단원고가 위치한 고잔동 일대는 여전히 ‘세월호의 비극’이 진행 중이었다. 사고 현장에서 수색 작업이 길어지면서 고잔동으로 돌아오는 가족들도 하나둘 늘어났다. 한 실종자 가족은 “어둡고 차가운 물 속에서 건져지는 시신들이 하나같이 내 자식인 것만 같아 견딜 수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단원고 2학년 7반 오모 군의 할머니는 오늘도 집밖에 나와 교복 입은 학생들을 바라보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는 지난주 오 군의 부모가 서둘러 진도로 떠난 뒤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 “진도에 내려간 아들은 아무 소식이 없다며 TV도 보지 말라고 한다. 멀리서 발걸음 소리만 들려도 손자가 돌아오는 것 같아 수시로 밖을 두리번거린다. 왜 우리에게 이런 고통이 온 건지….”

단원고 4층 강당에서 돌아오지 않는 외손자를 기다리는 할머니도 있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2학년 7반 김모 군(17)은 어머니가 두 누나와 함께 3남매를 키웠다. 그러나 최근 심장 수술을 받으면서 몸이 약해진 상태라고 한다. 어머니 대신 할머니가 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딸이 남편 없이 아들을 많이 의지하고 지냈다. 손자가 걱정돼 현장에 가고 싶지만 딸이 아파 그럴 수도 없다”며 흐느꼈다.

이처럼 실종자 가족은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원고 2학년 5반 김모 군의 어머니는 이웃이 운영하는 세탁소를 찾았다. 짙은 화장에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상태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세탁소 주인이 “그 집 아들은 별일 없죠?”라고 묻자 김 군의 어머니는 “우리 ○○이 아직 연락 안 왔어요. 곧 오겠죠”라고 답했다. 세탁소 주인은 그때야 멀쩡한 줄 알았던 김 군의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인 것을 알았다고 한다. 사라진 아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 발인, 퇴원, 수업 재개…힘든 상황 속에서도 ‘다시 시작’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가 대다수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시작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23일 현재 수색 작업 초기에 시신이 발견된 30여 가정이 안산으로 돌아와 발인을 마쳤다. 20일 발인을 마친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는 딸을 잃은 슬픔을 잊기 위해 딸이 사랑했던 제자들의 장례식장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김 씨는 “내 딸이나 딸의 제자나 안타깝기는 매한가지다. 하늘나라에서라도 다시 함께 만나면 한 반이 꾸려지지 않겠느냐”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생존자 가운데 일부는 건강 상태가 호전됐다. 고려대 안산병원에 입원한 83명은 일주일 동안 개별심층면담과 그룹치료 등을 받아왔다. 병원 측은 “의료진 회의에서 퇴원이 가능한 명단을 점검하고 있다. 일부 학생은 퇴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보호자와 상담해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단원고는 24일부터 순차적으로 수업 정상화에 들어간다. 일부에서는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들조차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임시 휴교가 길어지면 방황하는 아이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아 우선 학교를 정상화하기로 한 것이다.

○ “고향 안산에서 마지막을 보내주고 싶은데…”

자녀의 시신은 거뒀지만 장례를 치를 곳이 없어 고통받는 이들도 늘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시신을 거둬 안산으로 옮겨왔지만 이미 이 지역의 장례식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현재 안산지역 12개 장례식장에 안치된 시신은 92구. 하지만 안산시내에서 이용 가능한 빈소는 모두 52곳이어서 절반 가까이가 아직 빈소를 마련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안산시는 경기 시흥시와 화성시 등 인근 지역에서 빈소 285곳을 급히 수배했다. 안산시 관계자는 “세월호 유가족이 전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인근 지역에 장례시설을 마련했다. 안산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마련하고 장지에 시신을 안치하기까지 전 과정을 현장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유가족은 “자녀의 장례를 고향 안산에서 치르고 싶다”며 빈소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루아침에 자녀를 잃은 이들의 상처는 여전히 깊고 컸다.

안산=최고야 best@donga.com·서동일 기자
#세월호#안산#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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