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한 세월호 선체에 처음 진입해 선체 수색 작업을 벌인 지 6일이 지나도록 에어포켓(선체 중 공기가 남아 있는 공간)이 발견되지 않자 실종자 가족의 절망은 깊어지고 있다. 에어포켓이 없다면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경은 실종자 가족에게 수습된 시신의 인상착의를 잘못 전달하는 바람에 시신이 미확인 상태로 병원에 안치되는 일까지 빚어져 절망을 가중시켰다.
○ 에어포켓 한 가닥 희망 사라져
23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세월호 선내 3, 4층의 다인실을 집중 수색했지만 에어포켓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배 선체가 뒤집히면서 집기가 섞여 엉망이고 부유물로 인해 선실 입구가 막혀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상 에어포켓이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뜻이다. 수색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한 해군 고위관계자도 “침몰해 뒤집어졌던 선체가 좌현으로 다시 기울어져 넘어갔을 때 에어포켓이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에어포켓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실종자 가족들은 격분할 힘도 잃은 채 절망한 모습이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정부는 있지도 않은 에어포켓 가능성만 반복하면서 가족들에게 희망고문을 했다. 사실상 정부가 힘든 가족들을 두 번 죽인 것이다. 더이상 화낼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고 전했다.
○ 남학생이 곱슬 단발머리라고?
23일 오전 2시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 모인 진도 실내체육관 강당에 한 남성이 분통을 터뜨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남성은 체육관 한편의 신원확인소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등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22일 아침 시신으로 발견된 단원고 2학년 박모 군(18)의 아버지였다. “학부모들은 이것만 쳐다보고 있어. 그런데 옷 색깔도, 머리 모양도 다 틀리면 아이를 어떻게 찾냐고.”
박 씨는 22일 오전 9시경 체육관 강당 앞 대형 TV 화면에 뜨는 수습된 시신 정보를 유심히 봤다. 91번째로 수습된 단원고 남학생 추정 시신의 인상착의가 공개되고 있었다. “키 174cm 추정, 검은색 반팔티·검은색 아이다스, 통통한 체격, 곱슬머리 단발….”
아들과 체격, 키, 옷 스타일이 같아 가슴이 덜컥했지만 곧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청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고 곱슬 단발머리가 아니라 짧은 머리였다. 그러나 이날 내내 91번째 시신 정보가 계속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박 씨는 22일 밤 미확인 시신이 안치된 목포 시내 병원으로 달려갔다. 시신 얼굴을 확인한 결과 아들이었다. 시신의 머리 모양은 곱슬 단발머리가 아니라 짧은 머리였다. 박 씨가 병원으로 가 확인하지 않았다면 DNA 대조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거나 미확인 시신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상황. 박 씨는 “상식적으로 남학생이 곱슬 단발머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항의했다.
현재 해경은 시신을 수습한 뒤 팽목항까지 이송하는 배 위에서 시신 인상착의를 보고 옷차림 등의 정보를 기록한다. 이 정보는 곧바로 팽목항 실종자 가족 대기소와 진도체육관 강당으로 전송된다. 가족들은 이 정보가 자녀와 비슷하다고 판단되면 신원확인반을 찾아 시신을 직접 확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1차 인상착의 확인이 배 위에서 진행되는 데다 재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 인상착의가 틀릴 가능성이 있다. 항의가 이어지자 해경은 향후 인상착의 게시물에 신체 특징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게시하겠다며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23일 현재 만 하루가 지나도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시신은 10구에 이른다. 37번째로 발견된 남성의 시신은 발견된 지 나흘이 지나도록 신원 확인이 안 돼 가족에게 인계되지 않고 있다. 미확인 시신이 나오는 것은 실종자 가운데 대다수가 주민등록이 되지 않아 등록된 지문이 없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DNA 대조를 통해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23일부터는 검안 속도를 높이기 위해 팽목항에 간이 영안실이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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