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에 20년째 인천∼제주 항로 독점을 보장해준 것으로 드러나면서 현행 항로면허 제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유 전 회장이 부도를 낸 뒤에도 미리 빼돌려둔 재산으로 차린 해운사를 통해 기존 업체의 항로를 물려받는 것을 방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해수부는 1999년 세모해운이 인천∼제주 항로면허를 청해진해운에 매각하는 것을 승인하면서 두 회사의 관계를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당시 세모해운의 주요 간부들이 모두 청해진해운으로 자리를 옮긴 데다 세모해운이 보유했던 항로면허 대부분이 청해진해운에 매각됐다”며 “이를 승인한 해수부가 두 회사가 같은 회사라는 것을 몰랐을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고 말했다.
당시 세모해운을 비롯한 세모그룹은 2000억 원대의 빚을 지고 부도를 냈다. 그런데도 해수부가 세모해운이 청해진해운에 인천∼제주 항로를 넘겨주는 것을 묵인한 것은 항로면허를 발급하거나 면허매각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해운사의 건전성 등을 심사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또 신규 해운사가 기존 항로에 취항하는 것을 막는 높은 진입규제도 유 전 회장 일가의 해운사가 이 항로를 독점할 수 있었던 이유로 꼽힌다. 현행 해수부 면허체계는 항로를 먼저 차지한 해운사의 최대 운송수입 대비 평균 운송수입이 25%만 돼도 새로운 선박을 들여와 증편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러나 다른 해운사가 같은 항로에 취항하려면 이 비율이 35%를 넘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인천∼제주 항로 이용객이 급증하는데도 다른 해운사는 이 항로에 취항하기 어려웠다.
한 해양 관련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현행 면허제도가 이미 면허를 가진 영세 해운사를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99개 연안 항로 중 85개가 독점인 상황”이라며 “독점을 보장받은 해운사들은 노후 선박을 무리하게 운영하면서 비용을 낮추려 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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