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게 느껴졌다. 전남 목포에서 진도까지는 40여 km. 승용차로 빨리 가면 40분 정도 걸리지만 길은 천리 길 같았고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고교 동창들에게서 친구 아들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22일.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동창생은 기자를 기억하지 못했다. 워낙 경황이 없었던 데다 졸업한 후 20년 넘게 만나지 못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다음 날 실종자 가족이 모여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으로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없었다. 팽목항에 있는 실종자가족대책본부로부터 ‘시신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아내와 함께 짐을 챙겨 떠난 터였다. 그는 문자메시지로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이 ‘134번’이라고 알려왔다.
팽목항에 도착했지만 한동안 그에게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초점 없는 눈빛으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어머니, 사망자 현황 게시판 앞에서 행여 자녀 이름이 오를까 숨죽인 채 지켜보는 아버지…. 내 자식만은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 온 이들 앞에서 친구를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항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신원확인소’(임시 안치소)에 있었다.
“아이들을 봤는데 그 얼굴이 그 얼굴 같고… 아들 얼굴도 못 알아보는 내가 아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친구는 고개를 떨군 채 말을 이어갔다. “아내는 (아들이) 맞다고 빨리 (안산으로) 올라가자고 하는데 혹시 시신이 바뀔지 몰라 DNA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이 징한 바다를 보고 싶지 않지만 통보가 늦어지니 어쩌겠느냐”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믿고 여행을 가다가 죽었잖아. 그럼 누구 하나 뺨 맞을 각오를 하고 나서야 하는 것 아니야. 이게 대한민국이냐고…”라며 울부짖었다.
무거운 침묵 끝에 친구가 말을 건넸다. “너는 애들이 어떻게 되니.” “중학생과 초등학생 딸 둘이 있다”고 하자 그는 “집에 가면 꼭 안아 줘라. (아들한테) 그러지 못한 나는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친구의 얼굴에는 아버지로서 자식을 지키지 못한 죄스러움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자식을 잃은 그 친구만이 짊어져야 할 아픔일까. 책임은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을 사지로 내몬 무능한 대한민국 어른들에게 있는데 말이다. 대형사고가 나면 재발 방지책을 만든다고 부산을 떨다가도 금세 사고 수습 매뉴얼을 서랍 속에 처박아 놓는 나라. 천금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차디찬 바닷속 아이들을 어찌해주지 못하고 우왕좌왕 시간만 보내는 나라. 도대체 이 큰 죄를 어찌할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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