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고야]분향소 조문 사진촬영 소동… 배려보다 변명 바쁜 이정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5일 03시 00분


[세월호 침몰/기자가 본 현장]
한심한 정치인

최고야 기자
최고야 기자
23일 오후 2시경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경기 안산시 올림픽체육관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어두운 표정으로 조문을 하고 분향소를 나서던 이 대표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안경을 벗고 얼굴을 가린 채 힘겹게 흐느꼈다. 분향소 앞에 마련된 천막에 도착해서는 방명록을 앞에 두고 입을 가린 채 한참동안 울먹였다. 잠시 뒤 “사랑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10여 분 만에 보좌진과 함께 사라졌다.

문제는 이 대표가 떠난 5분 뒤에 일어났다. 울고 있는 이 대표의 사진을 찍기 위해 이 대표 측 관계자들과 기자들이 뒤엉키는 상황이 벌어지자, 참다못한 단원고 학부모 자원봉사자들이 책상을 엎고 방명록을 내던지며 고함을 질렀다. 학부모 봉사자들은 이 대표가 떠난 허공에 대고 “정치인 하나 온 것이 무슨 대수냐. 희생자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 “진도 체육관에는 비닐 하나 덮고 생사 모르는 자식들 기다리는 가족들 천지다”라며 울부짖었다. 또 다른 봉사자는 “정치적인 쇼일 뿐”이라며 혀를 찼다.

당시 현장에서 이 장면을 지켜 본 취재기자들이 이 대표가 조문을 다녀간 뒤 유족 관계자들이 항의하는 소란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대표 측은 이 보도에 대해 “이번 사건은 이 대표가 자리를 뜬 후 발생했고, 따라서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일”이라며 언론사에 정정보도 요청을 했다. 통진당 관계자는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유족들이 안산시 공무원들과 싸우면서 생긴 해프닝이라고 들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학부모 봉사자들의 절규가 이 대표를 향한 것이었단 걸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대표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정부와 정치인과 또 세상을 향한 절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안타까운 외침에 이 대표 측은 “우리와 무관한 일”이라며 한마디로 잘라 버렸다.

최소한 이 대표가 희생 학생들의 영정사진 앞에서 흘린 눈물이 진심이었다면, 방명록에 남긴 “죄송하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면, 이런 식으로 대처해선 안 됐다. 최소한 자리를 떠난 뒤 일어난 상황을 제대로 알아보고 행여나 작은 실수로 유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봤어야 했다. 정치인으로서 이번 사건에 책임을 통감하기보다 발 빼기에 급급했던 그의 뒷모습은 세월호 침몰로 어린 학생들을 떠나보낸 부끄러운 어른들의 또 다른 면면이 아니었을까.

안산=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세월호 침몰#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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