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과 만찬을 포함해 모두 5시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다. 정상회담은 당초 1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외교안보 현안과 에너지 분야 협력 등을 논의하면서 33분이 더 늘어났다. 이날 만찬의 메뉴 중 하나로 미국산 쇠고기와 미국산 와인이 제공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강화를 상징한 셈이다.
두 정상은 공동 기자회견 뒤 청와대 정원을 산책하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산책을 하면서 주로 일자리 창출과 관련한 얘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 “위안부 문제, 정확하고 분명한 평가 필요”
이날 가장 주목받은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발언이었다. 그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 침해”라며 “전쟁 상황임을 감안해도 쇼킹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그들(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며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고 분명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일본인들도 과거를 솔직하게, 공평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본다”며 “과거의 긴장을 솔직하게 해결하고 동시에 미래에 눈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직접 언급한 것 자체가 처음이어서 향후 한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도 여러 차례 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인권 문제임을 강조했다. 이런 주장에 오바마 대통령도 공감했다고 볼 수 있다. 또 동북아의 긴장을 누그러뜨리려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야 하는 만큼 과거사 문제를 하루빨리 털어내라는 메시지를 일본에 전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날 정상회담 뒤 발표된 ‘한미 관계 현황 공동 설명서(Joint Fact Sheet)’에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3국 간 정보 공유의 중요성을 인식한다”고 명시돼 있을 정도로 미국은 한미일 3국 공조 강화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3국 간 역사와 영토 문제로 긴장이 고조되는 데 대해서도 분명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미국의 최우선 관심은 국제적 규범과 법치를 준수하는 것”이라며 “당사국들이 법과 외교를 통해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북핵은 미국의 직접적 위협”
두 정상은 이날 “북한이 말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발은 새로운 강도의 국제적 압박을 가져올 것”이라며 북한의 추가 도발을 강하게 경고했다. 박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4차 핵실험을 강행할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라며 “언제든지 (실험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직접 북한의 4차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사태로 북핵 문제가 미국 외교 현안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북핵 문제는 한일 동맹국에 위협이 될 뿐 아니라 미국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우리는 관심을 다른 데 돌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은 전 세계를 위협하는 무기 확산국”이라며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이 있다면 우리는 추가적인 압력 방법을 찾을 것이다. (북한이) 대가를 치르도록 영향력 있는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두 정상이 26일 서울 용산구 한미연합사령부를 함께 방문하는 것도 △한미동맹 연합 방위력의 중요한 의미를 되새기는 한편 △대북 억지 태세를 과시하기 위한 일정이라고 청와대 관계자가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방법에 대해 “한 번에 해결하는 마법은 없다”며 “우리는 매우 일관되게 접근하고 있다. 잘못된 행동에 보상을 주지 않을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한국, 일본의 결속력”이라고 밝혔다. 6자회담과 관련해서는 “북한이 대화에 진정성이 있다면 구체적 조건하에 대화를 할 수 있다”며 “협상 테이블에 비핵화라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6자회담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과 한국은 심각한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 함께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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