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터넷 댓글 요령이나 알려주는 정부의 재난 매뉴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9일 03시 00분


해경은 세월호 사고의 최초 신고 이후 선박 침몰까지 2시간을 허비하고 배 안의 사람들을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다. 실종자 가족들을 더 화나게 한 것은 정부의 우왕좌왕하는 태도였다. 정부의 재난 대응 매뉴얼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안전행정부가 만든 ‘재난 유형별 주관기관 위기관리 매뉴얼’에는 인명 구조에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재난이 발생한 직후 최대한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빠져 있다. 이 매뉴얼은 지진 항공기사고 해양오염 등 33개 사고 유형으로 나뉘어 있다. ‘신속 대처하라’ ‘긴급조치를 하라’ 같은 지당한 말만 많다. 골든타임에 누가 구조를 총괄하고 군 경찰 소방대가 임무를 어떻게 분담할지는 빠져 있다. 반면에 언론 대응에 대해서는 소상히 다뤘다. 확실한 답을 요구하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빠른 시간 내에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빠져나가고, 상황을 가정한 질문에는 “가정해 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대답하라고 훈수한다.

해양수산부의 매뉴얼은 사고가 나면 축소나 은폐부터 하라는 지침 같다. 해수부가 지난해 제작한 매뉴얼에는 ‘충격 상쇄용 기사 아이템 개발’이 들어 있다. 재난이 일어나면 언론에 다른 기삿거리를 제공해 국민의 관심을 돌리라는 것이다. 해수부는 ‘커뮤니케이션 및 언론 대응’ 항목을 별도로 관리했다. 여기에는 ‘신문 발행 전 주요 언론사의 인터넷 뉴스 검색, 편집 방향 미리 탐색’을 하라, 언론의 ‘문제 보도’에 대해 ‘해명 자료를 배포하고 인터넷 댓글로 게재’하라는 지시도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자신들의 철밥통부터 챙기는 관료주의가 드러난다.

정부는 2012년부터 범정부 차원의 재난대비 훈련을 했지만 선박 사고에 대한 훈련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매뉴얼에 해양 오염은 있어도 선박 사고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준비 부족이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안행부 해수부 해군 해경 등이 제각각 허둥지둥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세월호#정부#재난 대응 매뉴얼#해양수산부#재난대비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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