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나르고 빨래하고… 슬픔 속 안산 보듬는 이웃사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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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아픔을 함께]재난도시에 희망 싹틔우는 주민들

진도 간 단원고 1, 3학년 학부모들 “손잡아 드릴게요” 세
월호 침몰사고의 희생자 유족이나 그렇지 않은 이나 깊은 슬픔에 빠져 있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럴수록 서로를 다독이며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28일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을 방문한 경기 안산 단원고 1, 3학년 학부모들이 한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진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진도 간 단원고 1, 3학년 학부모들 “손잡아 드릴게요” 세 월호 침몰사고의 희생자 유족이나 그렇지 않은 이나 깊은 슬픔에 빠져 있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럴수록 서로를 다독이며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28일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을 방문한 경기 안산 단원고 1, 3학년 학부모들이 한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진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뭘 도와주겠다는 겁니까? 내 아이를 살려줄 수 없을 거면 내버려 두세요.”

경기 안산시 단원구 와동의 임준수 주민센터 사무장은 요즘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작은 희망이라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임 사무장은 그렇게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들 가족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파악해 지원하기 위해서다. 임 사무장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자식을 잃었는데 누구를 만나고 싶겠는가. 이번 사고 가정의 3분의 1은 도움을 거절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번 사고로 극도의 슬픔과 원망, 불신 속에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선 서로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 주민이 가족처럼 위로하면 상처가 치유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안산은 고통에 빠져 있지만 아직 희망은 있었다.

○ 가족 잃은 슬픔, ‘이웃사촌’이 보듬다

정부는 안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지만 실질적 도움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가운데 사고 희생자 가정에 도시락을 배달하고, 빨래와 청소 등 가사를 돕는 동네 부녀회, 생활체육회 등 지역주민들이 나섰다.

요즘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와 희생자 부모들은 사고를 수습하느라 가정을 보살필 여유가 없다. 안산에 남겨진 가족들은 심리적인 불안에 빠졌고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다.

여동생을 잃은 고교 3학년 A 군(18)은 부모님이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가 있어 더 큰 외로움을 참고 견뎌야 했다. 그는 “학교에서 누가 말만 걸어도 눈물이 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정부에선 가족 치료를 지원해주겠다고 해놓고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다”며 힘들어했다. 삼남매를 홀로 키우던 B 씨(45·여)는 사고 당일 이사를 하려고 짐을 싸던 중 진도행 버스에 서둘러 몸을 실었다. 이웃에 사는 이모 씨(48)는 “B 씨가 통곡하면서 ‘남은 두 아이를 좀 챙겨달라’고 부탁해 보살피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처럼 주위를 잘 아는 지역의 이웃사촌들이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다. 고잔1동 주민센터는 몸이 아픈 노인 4명을 한도병원으로 옮겨 치료받도록 도왔다. 주민센터 이병인 사무장은 “주민자치위원과 생활체육회 등 지역단체가 2인 1조로 집집마다 방문해 도움이 필요한 가정들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잔동 부녀회는 사고 피해자들에게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부녀회 관계자는 “피해자 가족은 음식도 못 먹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이들을 위해 최대한 소화가 잘되는 물렁한 반찬 4, 5가지를 넣은 도시락을 만들어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만나는 것조차 거부하던 이들이 이웃 주민의 따뜻한 관심에 마음을 열고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와동주민센터는 지난주 발인을 마친 한 가정에서 “아이 방을 치우려는데 마음이 약해져서 아무것도 못하겠다. 도와달라”는 말을 듣고 달려가 학생의 방을 대신 청소해줬다.

○ 경황없는 피해자에게 ‘지원 신청하라’는 정부

반면 각종 지원대책을 발표한 정부의 지원은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황이 없는 피해자들에게 ‘지원 신청을 하라’며 현수막을 내걸었을 뿐 피해 상황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점검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는 18일 ‘긴급 가족 돌봄 서비스’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서비스를 시행한 지 10여 일이 지났음에도 지원 대부분은 피해 학생의 형제자매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게 전부다. 가사·육아 등을 돕고, 남겨진 가족을 돌보는 지원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가사도움을 받으려면 피해 가정이 직접 신청하거나 주민센터에서 파악해 대신 신청해야 하는데 이를 신청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의 계획은 ‘수요를 파악해 지원 방안을 구체화하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수요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피해 가족이 경황이 없어 집에 남겨진 가족을 챙겨달라는 문의가 많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안산=김수연 sykim@donga.com·홍정수 기자
#세월호#재난도시#이웃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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