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위험시설 분류 초중고 123곳 중 69곳 “돈 없어 개축못해”
복지예산 늘며 시설비 대폭 삭감… 23곳은 보수-보강 공사조차 미뤄
서울 용산구의 A고교는 올해 2학기부터 본관 건물 4층의 8개 교실에선 수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건물이 붕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다음 달 말까지는 층마다 초정밀 계측기를 설치해 실시간으로 하중 및 균열 정도를 측정하기로 했다.
29일 오후 취재진이 찾은 이 학교 건물은 외벽부터 불안해 보였다. 건물 외부 기둥을 받치고 있는 붉은색 벽돌 중 일부가 이가 빠진 듯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벽돌 사이사이를 메운 시멘트는 곳곳이 갈라진 상태였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니 복도 벽면 좌우로 하얀색 페인트를 덕지덕지 칠해 놓았다. 지난해 10월 이곳저곳 금이 간 벽면을 땜질한 뒤 그 위에 페인트를 칠한 것이라고 학교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렇게 페인트로 칠해 놓은 부분만 800m에 이른다.
1956년 처음 지은 뒤 두 차례 증축한 이 건물은 지난해 3월 정밀안전진단 결과 D등급을 받았다. 철근 부식, 콘크리트 파손, 재료 분리, 누수, 바닥 마감 균열 등이 이유였다. D등급은 ‘긴급한 보수 보강이 필요하며 사용 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태’, 전문가들은 반드시 개축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건물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건물을 새로 지을 돈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본관을 헐고 개축하는 데 75억 원이 들어가지만 재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학교 건물이 붕괴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예산 부족으로 방치된 경우는 많다. 본보가 지난해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된 전국의 초중고교 123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69곳(56.1%)이 돈이 없어 건물을 개축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23곳(18.7%)은 땜질 처방 격인 보수·보강 공사조차 예산 부족을 이유로 미뤄 학생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은 시설물 안전점검에서 D, E등급을 받으면 재난위험시설로 분류한다.
개축 등 공사가 시급한 학교들이 방치된 것은 비용 지원 의무가 있는 시도교육청의 관련 예산이 부족해서다. 교육청은 통상 교육환경개선비 가운데 일부를 학교 개축 비용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교육환경개선비로 편성된 예산이 크게 줄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교육환경개선비 예산은 2008년 6760억 원이었지만 올해는 801억 원. 이는 각종 교육복지 예산이 늘어나면서 교육환경개선비가 복지예산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필곤 서울시교육청 시설기획팀장은 “무상급식, 무상돌봄 등 복지예산이 늘어났는데 그 상당 부분이 교육환경개선비 같은 시설 관련 예산이 옮겨간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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