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방영된 아사히TV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룬 일본 드라마다. 지진 이후의 삶을 담은 2시간짜리 특집극으로 실제 지진 피해 지역에서 촬영해 웬만한 뉴스보다 더 적나라하게 자연재해의 참상을 보여준다. 작가 야마다 다이치는 지역 주민들을 인터뷰해 대본을 썼다.
사이고 료스케(나카이 기이치)의 외동딸 치아키(구로키 메이사)와 하마구치 가쓰미(야나기바 도시로)의 장남 슈이치(와타나베 다이)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두 집안은 내심 결혼에 반대하지만, 상견례 자리에서 둘의 의지를 확인하고 집안의 결합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5일 뒤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이 닥치며 두 집안의 운명은 엇갈린다. 높은 지대에 살던 사이고 집안은 무사했지만 하마구치네는 슈이치와 슈이치의 어머니가 죽고 집까지 잃는다.
사이고 집안은 하마구치 집안을 도우려 하지만 이들에겐 죽은 아들의 약혼녀 집안이 베푸는 호의가 부담스럽다. 구호물자와 따뜻한 격려도 때론 상처가 되는 법. 가족이 죽은 덕분에, 집을 잃은 덕분에 도움을 받으며 감사하다는 말만 계속하는 신세가 됐다는 할아버지의 대사는 생존자들의 솔직한 심정을 대변한다.
드라마 말미, 살아남은 하마구치네는 료스케에게 이끌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 집터를 보러 간다. 폐허를 외면하는 할아버지에게 손자가 말한다. “할아버지가 보든 안 보든 돌이킬 수 없잖아요.” 그제야 현실을 마주한 생존자들은 죽은 이들을 위해 꽃다발을 놓으며 처음으로 서로 부둥켜안고 목 놓아 운다.
훈훈하게 드라마가 마무리되는 건가 싶은 찰나 카메라는 눈물을 훔치며 뒤로 물러나 바다를 바라보는 료스케를 앵글에 담는다. 다음 순간, 바다는 별안간 거대한 파도로 요동치는 모습으로 변한다. 드라마는 쓰나미의 환상을 보고 공포에 질린 료스케의 표정을 통해 포옹과 따뜻한 위로가 있어도 그 고통은 여전하며, 결코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며 끝난다.
일본에서 이 드라마가 나오기까지 3년이 걸렸다. 자기가 겪은 일을 이야기로 만들어 공개했다는 것은 상처를 웬만큼 극복하고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공통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를 보며 일본 시청자들은 때로 공감하고 때론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드라마 제목대로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우리 역시 몇 년 뒤 이런 드라마 한 편을 얻게 될까. 그럴 수 있을 때까지, 드러내 이야기하고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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